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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곡동 서작가 Nov 02. 2020

익숙한 것과의 이별, 그리고

2019년 6월, 다시 돌아오다

2011년 여름, 생애 처음으로 낯선 땅에 '살기 위해' 가 닿았다. 베트남 2주, 중국 3박 4일, 일본 1박 2일이 해외경험의 전부였던 내게 그 해 여름 13시간에 걸친 비행은 낯설고도 설레는 일이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131 니밋츠 드라이브(Nimitz Dr.) Apt. 3에 들어선 것이 2011년 8월 13일. 아무것도 없었던 원베드룸 아파트를 세간으로 채우고 얼추 정리가 되어가던 어느 날, 나는 이렇게 써내려갔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은 때로 서운하고, 불편하고, 어렵지만, 그렇게 '집'을 떠나올 때 비로소 새로운 생각과 행동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 곳에서의 생각과 경험들이 차곡차곡 정리되면, 또 다른 곳에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바탕이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익숙한 것과 결별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 언제나 가슴 뛰는 열기를 지닌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내 주변도 생동감으로 살아 있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타국 생활은, 여러 면에서 나를 바꾸어놓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게 아이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가 하필 십만분의 1 확률의 희소질환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별안간 내 품에 떠안겨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싸우고, 화해하고, 이해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반 신발을 신거나 바지를 입을 수 없는 아이여서 틈틈이 재봉질하고 실내화도 만드느라 바빴다. 그래도 아이는 한껏 예뻤고, 우리는 살 만했다. 생활은 곤궁했지만 적당한 정도의 이방인으로 살 수 있어서 마음만은 편했다. 그렇게 적당히, 이방인으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또  번 나를 뒤흔들었다.


숱한 좌절과 고뇌 끝, 결국 손에 잡히는 것 하나 없이 귀국할 수밖에 없게 된 2019년 6월,  나는 어느새 훌쩍 커버린 만 여섯 살 아이를 붙들고 펑펑 울며 다시 커다란 이민가방에 짐을 나눠 담았다.


세간을 버리고, 팔고, 다시 못 볼지도 모를, 그곳에서 8년간 사랑과 우정을 나누었던 이들과 작별인사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낮엔 울면서 짐을 싸고, 밤엔 울며 잠 못 드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8년 전 쓴 위의 글이 떠올랐다. 8년 전의 용기를 생각해냈고, 그 다짐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고, 다시 다짐했다. 나는 또 한번 뛰어넘는 것이라고, 길이 막혀 주저앉거나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막힌 길을 뛰어 넘어 그 뒤로 난 여러 갈래 길을 탐하러 가는 것이라고.


2019년 6월 11일.


그렇게 우리 세 식구는 슬픈 듯 덤덤한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갈 때는 둘이었던, 그러나 셋이 된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몹시 낯선 이 땅으로 그렇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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