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입, 밀어냄:삶이 만드는 균형의 이치
뜨겁게 녹은 쇳물이 틀 안에서 서서히 식어가는 광경을 본 적 있는가. 겉으로는 그저 액체가 고체로 굳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안에서는 무척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 특히 내 생각을 사로잡았던 건 고체로 변해가는 경계면—그러니까 아직 액체인 부분과 이미 굳어버린 부분이 만나는 그 미묘한 접경선에서 불순물과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대학원 입학 초기, 응고현상을 전산 시뮬레이션하는 과제를 덜컥 받게 되었다. 해석하기 전에 우선 학부 때 배운 응고현상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그때는 단순히 금속의 응고현상 자체만 다루는 시뮬레이션이어서 순수한 금속만이 해석대상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응고결과물속에 포함된 불순물입자(금속의 입장에서 보면)의 크기, 형태, 분산도에 따라 제품의 특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른바 게재물(inclusion)의 제어가 중요한 이슈가 되어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는 것을 경험해 왔다. 그 게재물이 격자 위를 전진하는 고체 벽면과 마주쳤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그냥 밀려날까, 아니면 그대로 안으로 들어갈까? 별거 아닌 질문 같지만, 이게 은근히 철학적이다.
반대로 금속 입장에서 보면 선택의 문제로 바뀐다. 불순물을 안으로 받아들일 것인가(함입, Engulfment), 아니면 끝까지 밀어낼 것인가(밀어냄, Pushing). 그 선택결정은 이론적으로는 에너지 계산으로 시작한다. 불순물을 품었을 때 전체 시스템의 에너지가 더 낮아지면 금속은 쉽게 그걸 받아들인다. 이른바 함입현상이다.
하지만 또 다른 상황도 있다. 아무리 에너지적으로는 받아들이는 게 유리해도, 게재물입자가 너무 빠르게 성장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임계 성장속도를 넘어서는 순간, 금속은 분별할 겨를도 없이 눈앞의 모든 걸 통째로 삼켜버린다.
이 대목에서 문득 사람 사는 일이 떠올랐다. 우리도 살다 보면 원치 않는 경험이나 아픔을 마주하게 된다. 그걸 필사적으로 피하려 애쓰기보다, 차라리 온전히 받아들이는 편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때가 있다. 재료공학 용어로 하자면 '분산 강화'라고 부른다. 작은 입자들이 고체 내부에 고르게 퍼져 있으면, 그게 오히려 재료를 더 강하게 만든다. 그 작은 입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결정들이 생성되어 금속결정을 미세화시켜 금속자체로는 만들 수 없는 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삶에서 경험하는 현상도 유사하다. 조그마한 상처와 같은 내 의도와 다른 상황이 깨알같이 박힌 지난날의 이질감이 어느새 나를 단단하게 성장시킨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 역시 너무 바쁘게 살면서 좋은 것, 나쁜 것 가릴 새도 없이 모든 걸 받아들이게 되면 어느 순간 삶을 깨트리는 결함들로 예기치 않은 약점으로 드러난다.
그럼 반대로 뭐든지 밀어내기만 하면 될까? 그것도 문제다. 금속이 불순물을 계속 밀어내면, 응고가 끝날 무렵엔 그 불순물들이 결정과 결정 사이 경계(grain boundary)로 몰린다. 결정 내부는 깨끗해 보여도, 정작 결정들을 이어주는 경계선은 불순물 투성이가 돼서 약해진다. 이게 '입계 취성'이라는 현상인데, 재료가 경계면을 따라 쉽게 부서지는 거다.
조직이나 인간관계도 비슷하지 않나. 불편한 문제를 계속 외곽으로만 밀어내다 보면, 결국 가장 약한 연결 고리부터 무너진다.
실제 철이 굳을 때는 대부분 나뭇가지 모양으로 성장한다. 나무가 가지를 뻗듯이 복잡하게 뻗어 나가는데, 그 사이사이에 불순물이 물리적으로 갇혀버리기도 한다. 이건 금속이 선택했다기보다는, 그냥 구조상 어쩔 수 없는 경우이다. 우리 삶도 그렇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에 휩쓸리거나 얽히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걸 들여다보다 보면, 차가운 금속의 세계가 뜨거운 삶의 이치와 묘하게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속도를 조절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밀어낼 건 밀어내되—그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 무분별한 수용도, 과도한 배척도 결국엔 문제를 만든다.
재료공학이 재미있는 점은 이런 것들이다. 겉으론 딱딱하고 무미건조해 보이는 금속 이론 속에서, 어느 순간 사람 사는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 쇳물이 식어가는 과정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니, 재밌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