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를 조금 머금은 삶의 지혜
오래전에 퇴임한, 내가 근무했던 회사 CEO. 엔지니어 출신이었지만 그가 주재하는 회의 주제는 기술과 숫자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보고하다 보면 전쟁사와 위스키의 화학이야기가 튀어나오고, 조금 뒤에는 산업혁명 초기 제철 이야기로 옮겨 가곤 했다. 그래서 그분께 보고하러 들어가는 시간은 늘 묘했다.
자료는 치밀하게 준비해 가지만, 오늘은 어떤 방향으로 질문이 튈지 모른다는 긴장과 기대? 가 섞여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호주산 고품위 적철광(赤鐵鑛) 비중을 조금 줄이고, 갈철광(褐鐵鑛)을 늘리는 원가상의 장점과 관련된 기술적 이슈를 설명하던 자리였다. 슬라이드에는 Fe 품위, 가격, 감량(LOI), 공정 영향 같은 숫자들로 채웠다. 나는 평소처럼 설명을 이어 갔다.
“요약하면, 괴타이트(goethite, FeO(OH))가 많은 갈철광 비중을 서서히 늘리되, 예열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서..”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CEO가 그분 특유의 제스처인 고개를 약간 갸웃했다.
“잠깐만. 그럼 애초에 왜 어떤 건 적철광이고, 어떤 건 자철광(磁鐵鑛), 또 어떤 건 갈철광이지? 광물이 생성될 때 뭐가 달라서 그래?”
적철광은 Fe₂O₃, 자철광은 Fe₃O₄, 갈철광은 수분이 많아 품위가 낮고… 머릿속으로는 줄줄이 떠올랐다. 소결 때 쉽게 부서지고, 고로 통기성이 나빠져서 조업 조건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만 생각났다.
그런데 “처음 어떻게 생겨났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이 하나도 없었다. 풍화, 변성, 침전이라는 단어만 입 안을 맴돌 뿐이었다.
회의는 어찌어찌 마무리됐지만,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괜히 얼굴이 뜨거웠다.
그날 이후 갈철광(褐鐵鑛)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느껴졌다.
갈철광은 말 그대로 갈색 철광석이다. 적철광처럼 선명한 붉은색이 아니라 약간 바랜 붉은색이고, Fe 함량도 낮다. 결정수와 맥석, 그중에 별로 도움 되지 않는 실리카(silica)를 잔뜩 포함한 광물이다.
내부 결정조직의 대다수는 괴타이트(goethite, FeO(OH))라고 알려져 있다.
괴테(Goethe)의 이름을 딴 광물. 산화철 결정격자 안에 수산기와 물이 들어 있어, 화학식 한 줄에 물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가 파우스트를 쓴 작가라는 사실 말고도, 바이마르 광산국 책임자로서 실제 광산을 관리하고, 평생 1만 8천 점이 넘는 광물을 모았다는 기록은 이 시기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 수많은 돌 가운데 하나가 바로 괴타이트였다.
적철광은 오래전 바다에서 철이 산화되어 침전하고, 그 층이 오랜 시간 땅속에서 눌리며 물을 거의 다 잃어버린 끝에 굳어진 광석이다. 그래서 건조하고 치밀하다.
그런데 괴타이트는 생성과정이 다르다.
비와 공기, 지하수가 드나드는 자리에서 생성된다. 한 번 굳었던 철 광석이 오랜 시간 녹슬고 깎이면서 철이 물에 풀리고, 그 철이 다시 침전해 쌓인 결과다. 겉은 돌인데, 속에는 아직 물이 남아 있다.
제철소 입장에서 이 물은 관리해야 할 변수다.
괴타이트가 많은 갈철광을 가열하면 200~300도 부근에서 먼저 결정수가 빠져나간다. 결정 속에 담긴 수분과 수산기(OH)가 빠지면서 격자가 흔들리고, 광석이 잘게 부서진다. 소결공정에서는 미분이 늘고, 고로 안에서는 이 분가루 때문에 가스가 통과하기 힘들어진다.
화학식으로 보면 그저 FeO(OH) 한 줄이지만, 현장에서는 “사용하기에 조심스러운 광석”이다.
오랫동안 제철소가 사용하는 표준 철광석은 적철광이었다.
설비 설계도, 조업 노하우도, 경제성 평가도 모두 “적철광(hematite)”을 중심에 두고 짜였다. 고로는 물론이고, 대체공정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브라질·호주의 고품위 적철광은 예전처럼 넉넉하지 않다. 가격도 더 이상 우호적이지 않다. 남은 자원은 점점 갈철광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적철광만 골라 쓸 수 있는 시대”에서 “갈철광을 중심에 두고 모든 제철용 반응기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갈철광의 성격에 맞춰 공정을 재 구성하고 있는 중이다. 바꿀 수 없다면,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괴테는 그 광석에 물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이해했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시인이며 작가라는 이력을 감안하면 “겉으로는 다 철광석처럼 보여도, 어떤 것은 오래 불을 견딘 붉은 돌이고, 어떤 것은 아직 물을 품은 갈색 돌이구나.”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CEO가 겹쳐진다.
보고를 듣다가도 방향을 바꾸어 엉뚱한 질문을 던지던 사람. 공정을 묻다가 역사로 넘어가고, 숫자를 짚다가 사람 마음 얘기로 끝내던 사람. 괴테가 소설과 광산 사이를 오갔듯, 이 CEO도 도면과 책, 사람 이야기를 함께 붙들고 있었다. 그때는 그런 호기심이 부담스러웠다.
“오늘은 또 어디로 튈까.” 전날 밤까지 자료를 뒤적이며 긴장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질문 덕분에 나는 갈철광을 단순한 “저 품위 원료”가 아니라 하나의 삶으로 보기 시작했다. 사람을 떠올려 보면, 적철광 같은 사람이 있다.
많은 일을 겪으면서 감정의 수분을 어느 정도 덜어냈고, 웬만한 열에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한 번 정한 생각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조직 안에서 보면 믿을 만한 기둥 같은 존재다.
자철광 같은 사람도 있다.
자기 방향이 또렷하다. 마치 자기장을 품은 자철광처럼, 스스로 가려는 방향으로 주변을 조금씩 끌고 간다. 이런 사람에게는 목표만 정확히 제시하면 된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는 다수는, 어쩌면 갈철광에 가깝다.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마음이 반응하고, 말 몇 마디에도 쉽게 젖는다. 온도가 올라가면 마음속 결정수가 먼저 끓어올라 흔들린다. 그래서 잘 부서지고, 다시 뭉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젊을 때 나는 이런 성향을 단점이라고만 생각했다.
“왜 이렇게 쉽게 동요하지?”, “왜 이렇게 마음이 눅눅하지?”
하지만 갈철광과 괴타이트를 경험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수분이 있다는 건, 아직 완전히 굳어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완전히 말라버린 적철광은 안정하지만, 크게 변하진 않는다.
괴타이트는 불편하고 취약하지만, 그래서 더 잘 변할 수 있다. 제철소에서 약간의 기술과 손길을 더하면 충분히 쓸 만한 원료가 되듯이.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쉽게 상처받는 성격, 환경에 민감한 마음이 결국 나를 바꾸고, 남을 이해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나는 어떤 광석에 가까울까?”
불에 강한 적철광 같은 사람인가, 방향이 분명한 자철광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물과 흙을 한껏 안고 있는 갈철광 같은 사람인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세 번째에 더 가깝다.
술 한 잔에도 금방 얼굴이 달아오르고, 말 한마디를 오래 마음에 담아 두는 편이다. 뜨거운 상황에서는 먼저 흔들리는 쪽이다.
예전에는 그런 나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길을 떠올린다.
제철소가 갈철광을 포기하는 대신 그 성질을 이해하고 공정을 새로 짜듯이,
나도 내 안의 괴타이트를 없애려고만 하기보다, 그에 맞는 삶의 조건을 찾는 편이 낫겠다고.
어느 온도에서 내가 쉽게 깨지는지 알면, 그 온도를 넘기지 않도록 숨을 고르고,
혹시 깨지더라도 다시 뭉칠 방법을 미리 생각해 둘 수 있다.
광석과 사람, 둘 다 완벽하게 건조된 존재는 아니다.
괴테가 괴타이트를 들여다보며 그 안의 물을 보았듯, 그 CEO는 회의실에서 숫자와 공정 뒤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함께 보려 했던 것 같다.
갈색 철 한 덩이는 이제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물기를 조금 머금고 살아도 괜찮다고.
다만 내 안에 어떤 물이 들어 있는지, 어느 온도에서 그 물이 끓어오르는지만은 알고 있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