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금질과 망치질로 만들어지는 축적된 에너지가 일으키는 유용한 변화
지구 중심에 존재하던 펄펄 끓던 용암이 지표 밖으로 튀어나오는 화산활동의 결과물로 생성된 철광석은 단지 무거운 돌일 뿐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인간의 노력과 우연에 의해 그 철광석에 붙어있던 산소 분자와 맥석(gangue)를 분리해 내는 방법을 알아낸 이후, 적용된 수많은 철강기술을 통해 강하고 값싼 소재를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철이 철광석으로부터 분리되면 비교적 순수하긴 하지만 그대로 사용하면 이후에 적용된 다양한 도구에서 요구되는 특성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대부분 철에 대한 인상은 ‘강함’으로 인식하는 데 이것만으로는 수많은 응용분야에서 제기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그 순수한 철을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구조재료로 사용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 야금기술(metallurgy)이고, 그중 대부분은 담금질(열처리)을 포함한 단조(鍛造), 단련(鍛鍊) 작업에 관한 것이다.
신체를 강건하게 하는 용어로 흔히 사용되는 단련(鍛鍊)은 금속가공분야에서 빌려와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속재료 전공과목을 수강하기 시작하면서 재료의 물리적 특성을 나타내는 용어를 배울 때, ‘금속의 피로(fatigue)’나 ‘크립(creep)’ 현상은 아직 별다른 전공지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쉽게 수긍이 되었다. 특히 영국 팝가수 radiohead의 유명한 팝송인 ‘creep’의 가사 내용을 오랜 시간 후에 알게 된 후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술적으로는 피로(fatigue)는 "고체 재료가 작은 힘을 반복하여 받음으로써 틈이나 균열이 생겨 마침내 파괴되는 현상”이다. 재료에 변동적인 하중이 작용하면 내부에 생기는 응력이 탄성한도 범위 내에서도 재료는 피로를 느껴 점차 약해지고 마침내는 파괴된다. 한편 크립(creep)은 “재료에 일정한 응력을 장시간 적용하면 시간 경과와 함께 변형되고 그 크기도 증가해 가는 현상”을 지칭하고 상온보다는 고온일수록 급속히 진행되는 현상이다.
재료의 열화현상은 여러 번의 반복된 사용 환경에서 '소재가 피곤을 느끼거나 열 받는?' 스트레스 조건에서 점차 기능을 잃어가는 현상을 의인화(擬人化) 하고 있다.
대장간에서 망치로 시뻘겋게 달구어진 철을 수 없이 내리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 가열된 철은 쉽게 가공하기 위한 것인데 상온에서 망치질을 반복하여 앞서 언급한 대로 강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하지만 너무 강하면 깨지지 십상이어서 다시 풀무 속에 집어넣어 받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과정을 풀림(annealing)이 필요하다. 이른바 병 주고 약 주는 과정을 반복하여 재료를 점차 강화시키는 과정이 마치 한 사람이 훈련이나 시련을 받아 더 강건해지는 여정을 유비(metaphor)하며, 동시에 너무 많은 과정 중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추스르거나 다독거리는 인간적인 과정과 유사하다. 한편 이런 풀림 과정을 충분히 갖지 않은 상태로 가공하거나, 가열한 후 별도의 처리가 없으면 시간이 경과되면서 점차 금속재료는 스트레스에 의해 과다하게 단단해져서 재료가 열화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재료의 강화 현상을 요약해 보면 소재가 추후에 받게 되는 다양한 환경에 대비해서 강하게(강하다는 말은 견디는 능력을 말하는데 단단하지만 유연함을 동시에 갖춘 것을 의미함) 제조되어야 하는데 제조부터 인위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그 스트레스가 오히려 득이 되게 하되, 일정 수준의 완화 과정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함은 우리가 사는 삶의 과정과 상당히 닮아있다.
때론 스트레스가 오히려 유용하게 사용되는 순기능이 있고, 그런 가혹해 보이는 시련의 과정은 새로운 특성으로 변화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평이한 상황에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기에 강하게 단련하거나, 높은 온도에서 급랭시키는 금속가공과정은 자칫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여러 사회현상을 역전시켜 해석해 볼 수 있게 한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이 제목의 공통점은 최근 전 세계를 이끌어가는 한류 영화 제목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영화가 전 세계적인 열풍을 가져온 것은 배우들의 연기나 감독의 천재적인 운용능력과 함께 시나리오의 독창성을 꼽고 있다. 인류 공통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주제와 시대의 현상을 대변하면서 세상의 공통 관심사로서 변화를 견인하고 있는 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부정적인 의미를 담는 ‘차별’, 혹은 ‘불평등’에 관한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반지하에 사는 사람과 그 위에 군림하는 가진 자의 공존 상황을, 오징어 게임에서는 빛에 쫓겨 무한경쟁에 내몰린 약자들의 생사를 건 줄 세우기를 관조하는 강자의 시선, 그리고 기성세대의 부조리에 희생되고 있는 학교 내의 누적된 병든 이슈가 긴장감을 이끌었다. 우리 사회에서 고민하는 그런 불편한 진실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닌 긍정적인 가치로 전환하는 관점의 전환을 생각해 보게 한다.
사람의 경우나 재료의 입장에서는 단련의 과정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대로 내버려 두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 다양화하기 위해 고난의 막대기나 대장장이의 망치질이 자신들을 그토록 가혹한 과정으로 내모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금속재료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용어와 중첩되어 일상에서 겪는 역경의 과정을 인내하게 하는 설득력있는 설명으로 활용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