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길 위에서> 홍석경
이 책은 한류 연구자인 서울대 홍석경 교수님이 빅히트의 지원을 받아 약 1년간 BTS의 국내외 콘서트를 따라다니며 팬들을 인터뷰한 현장연구를 기반으로 집필되었다. 교수님은 누구보다 BTS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팬들의 ‘전문성’을 인정하며, 따라서 이 책은 팬들보다는 일반 대중을 우선적으로 겨냥해 썼다고 설명한다. 어떻게 콧대 높은 미국에서조차 BTS에 열광하는지, 수많은 케이팝 그룹 중 왜 하필 BTS인지, 그들의 성공이 사람들에게 어떤 해방감을 주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서구에서 케이팝은 대체로 아이돌 음악으로 인식된다. 아이돌은 회사의 엄격한 관리와 통제를 받으며 따라서 이런 ‘공장식 생산’에서 나온 음악은 깊이가 없고 예술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케이팝 그룹들의 서구 진출에 큰 걸림돌이 되어왔다고 한다.
BTS가 이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힙합 아이돌이라는 ‘혼종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라는 정체성과 흑인 문화에서 온 힙합정신은 서로 모순된다. 아이돌은 회사의 기획 속에서 프로듀싱되고 힙합은 자신의 현실 경험을 통해 창작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BTS 멤버들은 아이돌 시스템으로 관리되면서도 음악적으로 상당한 자율성을 보장받으며 앨범의 작사작곡에 참여해왔다. 그들은 개인의 성장통을 다년간의 앨범과 스토리에 담아냈고 결국은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많은 해외 팬들이 현재 서구에 BTS처럼 긍정적인 메시지를 지닌 아티스트들이 없음을 호소한다. 섹스, 마약, 우울, 무기력함이 주 컨셉을 이루는 서구 아티스들 속에서 BTS의 Love Myself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있다.
BTS는 멤버들 사이가 좋기로 유명하다. 원래 한국 아이돌 문화에서 ‘관계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근데 이런 관계성이 한국을 넘어 개인주의가 강한 해외에서도 잘 먹히는 듯. 아니 오히려 개인주의가 강해서 공동체로서의 친밀한 인간관계가 결여되었기에 ‘좋은 관계성’이 그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도 있겠다.
한국의 팬덤 문화 또한 서구 팬들에게 매력적이다. 케이팝 해외 팬덤이 느끼는 케이팝의 매력은 단순한 노래와 춤이 아니라, 팬덤 문화에 내재된 한국의 인간관계라고 한다. 한국 아이돌 팬덤은 자발적 조직 능력이 강하다. 투표, 스트리밍 등 총공 문화와 각종 이벤트를 조직하고 물자를 기부하는 선행 활동 속에서 그들은 강한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아미와 같은 거대한 팬덤은 그 매력이 한층 올라간다. 아미가 전 세계에 퍼져있기에 어디를 가든 친구를 사귈 수 있다. BTS가 좋아서 팬이 된 후, 아미라는 역동적인 공동체가 주는 소속감이 팬 정체성의 유지와 강화에 큰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는 그들의 시선에서 생산된 매력적인 남녀의 상을 전 세계에 퍼뜨렸고 그 영향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것은 지극히 백인 중산층 이성애 남성 중심적인 것이다.
(남자는 강하고 거칠며, 여자는 남자에게 유혹적이어야 한다는 지배 의식이 깔려있음)
BTS는 화장을 하고 가꾸는 남성, 여성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남성, 부드럽고 해롭지 않은 남성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지배적 남성성에 근본적 도전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근데 이런 남성성을 가진 BTS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기본 틀을 따르지 않고도 성공을 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BTS는 세상에 일종의 ‘대안적 남성성’을 제공해줌으로써 강박관념으로부터 억압받던 사람들에게 해방감을 준다.
또한 BTS 멤버들은 동성인 남자들 사이의 사회적 친밀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 왔다. 이는 서구 남성들에게 ‘동성친구들과 친밀감을 표현하면서도 이성애자의 정체성을 의심받지 않을 수 있다’는 해방감을 준다.
서구의 정상적인 이성애 규범이 지나치게 편협하여 다양한 젠더 감수성을 지닌 개인들이 사회의 억압 속에서 고통받아야만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BTS는 이성애자뿐만 아니라 LGBTQ그룹에게도 해방감을 줄 수 있다. BTS는 동성 간의 우정과 애정표현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고 정상적임을 대변함과 동시에 동성애와 동성 사회성의 경계를 흩뜨려 모호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이 속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LGBTQ 그룹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더욱 자유롭게 발전시킬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말 그대로 BTS에 관한 종합서적이다. 보통 책들은 한 분야에만 초점을 맞추어 쓰기 마련인데, 홍석경 교수님은 문화적, 산업적, 사회적, 미디어적 관점에서 전방위 분석을 해준다. 책 하나로 정말 풍부한 지식을 얻어가는 기분이다. 특히 6장은 다른 BTS관련 책들에서 흔히 볼 수 없던 내용이라 유의 깊게 보았다. 바로 BTS가 대안적 남성성의 모델이 되며 청년 세대의 젠더 감수성에 미친 영향을 다룬 부분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스토리는 교수님이 직접 산 중턱에 있는 서울대 폐수영장에 가본 것. 여기가 전설의 ‘화양연화’ 세계관이 시작되던 곳이라고 생각하니, 교수님이 느꼈을 가슴 벅찬 그 느낌이 나에게도 전달되는 듯하다!
# 이 글은 ‘신간 리뷰어 모집 이벤트’에 당첨되어
출판사 어크로스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