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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Oct 24. 2020

회사에서 짤리고 다단계에 가입할뻔했던 썰

집단에서 배제되었다는 참을 수 없는 창피함

벌써 6년 전 이야기이다. 나는 취업한 지 한 달도 안돼 나를 싫어하는 상사에 의해 회사에서 짤렸다. 수입이 끊긴다는 것도 문제지만, 더 나를 괴롭혔던 건 ‘창피함’이었다. 그때는 또래 여자 직원이 많은 회사였고 이제 막 동료들과 친해지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그들과 제대로 친해지기도 전에 짤려서 집단에서 배제되었다는 생각이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떠나고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까? 불쌍하다, 안 됐다, 예의 없어서 짤렸나?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다, 쟤처럼 되지 말아야지... 어떤 말이 오가든 다 쪽팔리는 거다. 나는 이미 회사를 떠나고 그 자리에 없는데도, 동료들의 대화 자리에 끼어있는 게 아닌데도, 집에 혼자 있는데도, 쥐구멍을 찾아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내게 팀장님이 연락해왔다. 팀장님과 조원 몇 명이 나를 좋게 봐왔다면서, 자기들끼리 하고 있는 ‘부업’이 있는데 나도 같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거다. 회사에서 3년간 뼈 빠지게 일해봤자 몸만 아프고 돈은 모아지지 않더라며 자기들도 곧 퇴사하고 그 ‘부업’에 집중할 거라고 하였다. 그들도 곧 퇴사를 하겠다는 말은 이상하게도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내가 회사를 못 다니게 된 게 어차피 잘 된 일이고, 회사에서 짤린 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짤렸다는 수치심에서 해방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나는 전 직장 동료들과 모여서 일산 킨텍스에 가게 된다. 거기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인파로 붐비었고 어마어마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슈트를 입고 금방 비행기에서 내려온 듯한 외국인들, 열정적인 얼굴로 서로 웃으며 반겨주는 사람들... 아뿔싸, 그 말로만 듣던 다단계 행사장이었다. 여기에 12,000명이 모였다고 한다.



무대에서는 카리스마와 유머를 겸비한 ‘리더’들이 확신찬  어조로 연설을 하고 있고, 심지어 연예인도 등장했다. 내 귀에는 얼토당토않은 소리였지만, 동료들은 연신 끄덕끄덕했다. “멋있다. 우리도 저렇게 되자. 할 수 있다!”하며 서로 손잡아주고 격려해주었다. 심취한 사람들 사이에 나만 ‘깨어있는’ 이 느낌은 뭐지? 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말 다 이 조직의 윤리와 제도에 동의하고 따른다는 말인가? 분명 다 멀쩡한 사람들인데, 사회적 지위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도 있던데, 저 사람들이 정말 믿는 걸까? 믿는 척하는 연기가 아닐까? 내 머릿속에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행사가 끝나고 우리 팀은 한자리에 모여 앉아서 나에게 상담을 해주었다. 이렇게 좋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약간의 종잣돈이 필요한데, 내가 이제 직장도 없고 경제적으로 엄마한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니, 엄마한테 어떻게 잘 얘기를 해야 그 돈을 얻어낼 수 있을지 논의하고 의견을 내주었다.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타인이 나에게 주는 지대한 관심’과 ‘우리는 한 팀이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물론 나는 엄마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고 그 동료들과 두 번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쉽게 현혹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회사에서 짤리고 ‘창피함’에 시달리지만 않았다면 아예 처음부터 그들을 따라서 행사장에 가지도 않는다. 그들은 내가 취약해진 상태임을 파악하고 나를 ‘타깃’으로 정했던 것이다.


다단계 조직이든 광신적 종교든 사람을 끌어들이는 수법은 비슷하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유혹에 취약한가? 책 <패거리 심리학>에서 소개한 바에 의하면, 사회적 지원 시스템에서 배제되었다는 소외감을 가진 사람들, 사회 연결망이 붕괴된 사람이 특히 컬트의 유혹에 취약하다. 컬트 조직이 사람과 접촉할 때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그 잠재적 신입 회원을 가장 괴롭히는 삶의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다 (내가 그들의 타깃이 된 이유). 소속감이 필요한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희생하고 집단 생각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 내 동료들은 무슨 경우인가? 나처럼 조직에서 배제된 것도 아닌데. <패거리 심리학>에서는 컬트와 대중운동의 지도자들은 ‘좌절한 사람들의 분노를 명확히 표현하며 정당화한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그 좌절한 사람들은 진정으로 곤궁에 빠진 사람들이 아니라 성공이나 권력을 손에 넣지 못해 목적을 잃고 방황하며 따분하게 지내는 실패자들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 내 동료들은 월급 모으기에 지쳤고 성공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간절했다. 너무나 간절해서 다른 건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소속감’에 예민하고 ‘욕망’에 취약하다. 간절함에 눈 가려지면, 남에게 휘둘리고 특정 무리에 휩쓸리기 쉽다. 우리가 언제 약해지는가를 알고,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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