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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Jun 25. 2021

똑 부러진 게 정말 좋은 걸까?

야무짐에 관한 고찰

나는 영 싫은 소리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불편해도 내색을 안 하고 웬만하면 참고 넘긴다.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표현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일 때문에 싫은 소리 하는 게 너무너무 어색하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다리를 계속 떤다거나, 음식을 후루룩후루룩 소리 내어 삼키는 경우,

다소 신경이 쓰이지만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 싫어서, 결국 입 꾹 닫고 그 상황을 버티고 만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불편한 행동을 지적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어려운 게 있을까? ㅜㅜ


그래서 나는 야무지게 자기 입장을 표현하는 사람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똑 부러지게 할 말을 다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다 만나게 된 직장동료 K 씨.


에피소드 1:

어느 날 둘이서 대화하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녀가 스쳐 지나가듯 자연스럽게 한마디 했다.


"OO님은 왜 항상 버튼을 안 누르세요"


처음엔 뭐지 싶다가, 곧바로 상황 파악이 됐다. 돌이켜보니 우리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면 층수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늘 그녀였다. 그게 꽤 불만이었나 보다.


아하~ 이렇게 자기 생각을 스무스하게 표현하는 사람도 있구나. 평온한 어투지만 할 말은 하는 그런 단호함?? 야무지네~ 나도 저렇게 야무지게 말을 했으면 좋겠다.



에피소드 2:

어느 날 사무실 청소가 있었다. 쓰레기를 내가려 하는데 밖에 빗물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마침 가까이에 있는 그녀의 우산이 눈에 띄였고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우산을 들고나갔다. 우산이 낡아 보이는데 뭐 내가 사용해도 괜찮겠지 하면서..


내가 돌아온 후 그녀는 나지막한 소리로 정중하게 나의 무례함을 지적했다.


"OO님 아까 저한테 말도 없이 우산을 사용하셔서 불편했어요. 앞으로는 제 물건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따끔하게 바로 지적해주는 그녀의 행동에 놀랐다.

이래도 되는구나. 이런 일 때문에 불쾌했다고 지적해도 되는구나!


근데 이게 지적할 만한 일인가? 내가 무슨 귀중품에 손을 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콕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까?

그 우산이 허름했고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상태로 걸려있길래 내가 한번 더 쓰고 나간 건데. 아주 깔끔하고 마른 상태로 책상 위에 놓여있었더라면 내가 손 안 대지.


저 사람은 불편한 심정을 꼭 저렇게 드러내는구나. 나라면 별 개의치 않았을 텐데. 그래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어쩔 수 없지. 우리 사이 그 정도는 해도 되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그 이후로 비슷한 일이 더 있었고 나도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 왜 사소한 걸로 계속 뭐라 할까. 나는 뭐 지가 하는 행동이 다 맘에 들어서 싫은 소리 안 하는 줄 아나?


K와 나는 그냥 성격이 안 맞는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쌓인 게 많았는지 그녀의 말투는 짜증만 잔뜩 묻어났다. 어느 순간 정중한 어투는 사라졌고 그러다 결국 크게 화를 내는 일이 벌어져 관계는 나빠졌다.





또 다른 직장에서 만난 B양,


어느 날 내가 채팅창에서 B에게 말을 보냈는데,

잠시 후 B에게서 이런 어투로 말하는 거 기분이 안 좋다며 다음부터 신경 써달라는 취지의 답장이 왔다.


내가 '그런 의도로 말한 거 아니고, 쓰고 나니 이상해 보여서 아래에 이모티콘 추가했다, 이제 좀 더 신경 써서 보내겠다'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더니 B도 자기가 업무 때문에 예민해졌던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함.


ㅜㅜ

내가 보낸 말이 그 정도로 기분 나쁠 어투는 아니었다고 봄. 이게 기분이 안 좋아서 다음부터 신경 써달라는 말 들을 정도인가? 어이없다. 따지고 싶었지만 일 키우기 싫어서 그저 좋게 해명하고 넘김..

 

나도 B가 보내는 글이 언짢을 때가 많다. 말끝마다 <!> 부호가 붙어있는데, 강한 어투가 느껴져서 싫었다. 사실 같은 문자 부호라 해도 각자 느끼는 어감이 다르다. 이래서 비대면 소통이란 게 오해가 생기기 쉽다는 거다.


이런 걸 감안하면 충분히 상대방이 악의가 없다고 그냥 넘길 수 있는 상황인데 ㅜㅜ

왜 이렇게 쉽게 자신의 불쾌함을 남한테 표현하지?

나는 안 그러는데, 남들은 왜 서슴없이 나한테 표현하는 거지?


사실 언제부턴가 나는 B가 똑 부러지게 행동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그쪽 부서는 다들 만만치 않은 성격이다. 똑 부러진 말과 행동은 무슨 전염병처럼 같은 공간에서 퍼지는 것 같다. 그들 무리에서 혼자 어리바리해서는 안된다. 그들과 같이 있으면 편안함이란 없다. 늘 신경이 곤두서 있어야 한다. 정말 같이 일하기가 싫은 그룹이다.





나는 이제 똑 부러지게 야무진 사람이 부럽지 않다. 멋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냥 자신의 예민함을 서슴없이 표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계속 지적하는 거, 그거 정중하게 말하던 어쨌던 재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한테는 정이 안 간다. 차라리 그냥 어수룩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는 게 나아 보인다.


약간은 허술한 사람이 더 매력 있지 않을까?



이상 야무짐에 관한

고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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