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모으기)
아침산책을 나갔다가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신발이 벗겨진 채로 길바닥에 앉아있었고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급차는 오기 전이다. 부디 큰 부상이 없기를 바란다.
매번 사고 현장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심장이 빨리 뛰고 불안감에 휩싸인다. 몇 년 전 엄마에게 일어난 교통사고가 연상되면서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날 트럭 사고가 난 후, 사람들이 몰려와서 구급차를 부르고, 엄마는 길바닥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엄마는 뼈에 금이 간 정도로 예상했지만 사실은 뼈가 쪼개지고 살이 으깨지는 엄청난 부상을 당했다. 사람들이 측은하게 바라보는 한가운데 서럽게 울고 있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말로 형언할 수 없을 괴로움이 밀려온다.
교통사고와 관련해서 내가 늘 생각해오던 것들과 느끼는 감정이 있는데, 솔직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 그 생각들을 한두 개씩 정리해서 글로 적어보려 한다.
나는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에 감정이입이 되어 마음이 괴롭다. 그냥 지나가다 우연히 교통사고 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아픈데, 그 사고의 당사자가 나의 가족이 되었을 때는 마음이 찢긴 듯이 아리다.
사람들이 몰려 서서 사고당한 사람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무섭고 끔찍할 것이다. 측은한 생각과 함께 저기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감정을 느낄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건 끔찍하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사고당한 나’를 보고 끔찍해하는 건 더 끔찍하다. 내가 사람들이 느끼는 끔찍한 감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끔찍하다.
끔찍하다는 것은 무슨 감정일까. 다른 사람 앞에 나의 불행을 전시하게 된 창피함? 왜 하필 내가 사고를 당했을까 하는 억울함? 병원에서 안 좋은 결과를 통보받을 것 같은 불안함? 조금씩 다 섞여있는 것 같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의 근원적인 공포가 무엇인지 암시하는 것일지도.
그날 트럭 사고는 오전에 일어났는데, 수술실에는 밤이 되어서야 들어갔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른다. 비어있는 수술실이 없거나, 집도할 의사가 없거나, 아무튼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들어가게 됐다.
만약에 수술실에 빨리 들어갔더라면 어땠을까? 피부괴사가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고, 염증으로 인한 후유증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이런 생각은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불쑥불쑥 치고 올라오는 ‘그랬더라면’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그때 병원의 진짜 상황은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이 과연 최선을 다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빨리 수술해달라고 난리 칠 힘이 없었다. 다른 병원을 알아볼 능력도 없고, 누구한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그냥 기다려야만 했다.
남을 의심하고 탓하고,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 원망하는 것은 사람을 너무 괴롭게 만든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은 트라우마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에 그때를 회상하며 따지고 분석하면 안 된다.
진실은 모르는 것이다. 그냥 그때 모든 것이 최선이었다고 믿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 의사와 간호사 모두가 최선을 다했고 지금의 결과도 ‘최선’이라고 믿어야 한다. 더 나쁜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고 지금 이 결과로 이어졌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냥 이렇게 단순 무식하게 믿는 것이 좋다. 정신건강에 이로우니까. 아, 그러고 보니 단순한 건 맞지만, 무식한 건 아닌 것 같다. 삶을 버티게 해 줄 지혜일지도 모른다. 삶의 지혜.. 이게 맞는 것 같다.
이상 교통사고와 관련해서 나를 괴롭혀왔던 생각을 2개 정리해보았다. 사실 두 번째 생각은 완전히 정리가 된 상태이지만, 첫 번째 생각은 아직도 모르겠다. ‘끔찍함’에 대한 공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왜 이런 공포를 느끼는 것일까. 다음번엔 더 잘 풀어서 쓸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