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eless 리뷰
시간이 흘러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왜 사람은 노화할 수밖에 없을까? 약간 웃기지만 나는 ‘나이’란 혹시 내 몸이 받은 태양광의 총량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햇빛이 피부에 안 좋다는 글을 많이 봐서 자연스레 노화와 햇빛을 연결시켰던 것 같다. (나이 듦 = 햇빛을 받음)
이런 나의 궁금증을 책 <에이지리스>가 해결해주었다. 답은 바로 진화에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노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망 위험이 증가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노화의 근본 원인은 ‘진화의 힘이 닿지 않아 걸러지지 않은데 있다’고 본다. 흥미롭다!
사고실험:
먼 옛날 섬에 살고 있는 동물을 생각해보자. 이들은 맹수에게 잡혀먹을 수 있고 전염병에 걸려 죽을 수 있다. 이렇게 외부 요인에 의해 죽을 확률을 ‘외인성 사망률’이라고 한다. 외인성 사망률을 10퍼센트라고 하면, 동물이 1년 후 생존할 가능성은 90퍼센트, 2년 후 생존할 가능성은 81퍼센트... 이렇게 계산하다 보면 이 동물이 50년을 살 확률은 1퍼센트도 안 된다. 이 경우 사망률은 나이에 따라 변하지 않기에 동물은 ‘노화’되지 않는다. 노화는 나이에 따라 사망률이 증가하는 것이기에.
아직 내인성 사망률은 0퍼센트인 상태다. 이때 몇몇 동물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기 시작한다. 우선 젊은 나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돌연변이를 상상해보자. 이 동물은 한창 젊은 나이인 2살에 생존 능력이 강해지거나 번식 능력이 좋아진다. (한 배에 새끼 여러 마리를 낳거나, 부리가 넓어져 더 많은 먹이를 모아 새끼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능력) 그러면 이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는 다른 개체보다 더 많은 새끼를 낳고 키우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개체군에서 수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진화에 성공한 셈.
만약에 2살이 아니라 50세에 번식능력이 좋아지는 돌연변이가 생겼다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 동물은 50세 전에 죽어버릴 테니 이 경우 초강력 번식 효과를 볼 수가 없다. (긍정적인 돌연변이 효과가 인생 후반에 나타나면 진화에 크게 유리하지 않음.)
이번에는 긍정적인 변이가 아닌 부정적인 변이가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생식가능 연령인 2세에 죽을 위험을 높이는 돌연변이. 이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들은 다른 개체에 비해 오래 살 수 없고 따라서 새끼도 남만큼 많이 낳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이 돌연변이 유전자들은 후세에 계속 전달될 가능성이 적다. 새끼를 낳기 전에 죽어버리니까. 즉 진화에서 걸러지는 것이다.
반대로 50세에 죽게 되는 돌연변이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 이 치명적인 변이는 진화에 의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후세에 유전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대부분 동물들은 50세가 되기 전에 새끼를 낳을 만큼 다 낳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노년에 영향을 주는 부정적인 돌연변이들은 진화에서 걸러지지 않고 계속 축적될 수 있다. 이것이 노화의 원인이다. 노화란 노년에 건강을 악화시키는 돌연변이가 축적되었는데 진화가 그것을 간과하는 바람에 생긴 현상이다.
이렇게 진화에서 걸러지지 않고 축적되는 것을 ‘돌연변이 축적 이론’이라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헌팅턴병이 되겠다. 헌팅턴병은 단일 유전자가 일으키는 희귀병이다. 보통 30세에서 50세 사이에 증상이 생기고 진단 후 20년 안에 사망한다.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의 수명은 30에서 35년 정도였기에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40에 병에 걸려 60에 죽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이미 그전에 자녀를 낳았으니까. 때문에 헌팅턴병은 굉장히 치명적인 병임에도 불구하고 인구 집단 속에 여전히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이제부터 무서워진다. 이 책은 진화는 젊은 나이에 번식 성공률만 높일 수 있다면 기꺼이 미래 수명까지 단축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젠장!..
만약에 한 유전자가 어떤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나타낸다면 다른 면에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적대적 다면발현’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유전자들이 공모해서 30살이 넘으면 죽을 위험이 높아지지만 어릴 때에는 1년 더 빨리 성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것. (이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는 그러지 못한 동물들에 비해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날 것이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왜 빨리 번식하면 노년에 수명이 짧아지는 걸까?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여기서 ‘일회성 체세포 이론’이 등장한다. 체세포와 생식세포는 다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체세포는 소모품이다. 우리가 제한된 에너지를 체세포 유지에 많이 쓰면 그만큼 생식세포를 돌보는 에너지는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어느 쪽에 에너지를 많이 써야 유리할까? 젊을 때 더 많은 번식을 하도록 에너지를 사용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노년까지 체세포를 새것처럼 유지하는 데 사용해야 좋을까?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그 답은 ‘외인성 사망률’에 달려있다. 외인성 사망률이 엄청 높다면 생식에 에너지를 많이 쏟고 빨리 죽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반대의 경우 (생식보다 체세포 유지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썼다면) 그 종은 진화에서 도태되어 이미 지구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위험한 환경에서 사는 동물들은 빨리 번식하고 그만큼 수명도 짧다. 생쥐는 한 달에 한번 새끼를 낳고 또 한 번에 여러 마리를 낳을 수 있다. 엄청난 속도로 번식하는 만큼 그들의 수명은 2년도 안된다. 반대로 북극 고래들은 20대가 되어야 번식하고 4~5년마다 한 번에 한 마리씩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고래를 위협하는 존재가 별로 없기에 그들은 번식을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성장하고 오래 살아도 되는 것이다.
이상 노화가 진행되는 이유를 알아보았다. 억울하다. 왜 노년에 건강해지는 돌연변이는 축적되지 않았을까.. 근데 신기한 건, 암컷 어류는 나이가 들수록 몸집이 커지면서 더 강해지고 번식능력도 좋아진다고 한다. 나이가 든 물고기가 어린 물고기보다 수십 배 더 많은 알을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상식을 뒤엎는 현상이 실제로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한 갈라파고스 땅거북은 170세의 고령에도 청년처럼 정정하게 살다가 175세에 심장마비로 생명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처럼 나이가 들어도 운동 능력이나 감각 능력에서 별다른 장애가 나타나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것을 ‘미미한 노쇠’라고 부른다.
그럼 나이가 들수록 사망 위험이 줄어드는 ‘거꾸로 노쇠’도 가능할까? 이 책에서는 그런 생물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니 우리가 그들을 찾아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수하는 종의 비결을 찾아서 그것을 모방하는 약물이나 치료법을 개발하면 된다. (그러려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장수 생명체들이 인류가 저지른 환경파괴에 의해 멸종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늙는 이유를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기도 한다. DNA 손상, 짧아진 말단소체, 변형된 단백질 문제... 등등. 무척 유용한 내용이라 전부 글에 담고 싶은데, 그러려면 책을 그대로 다 옮겨야 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어떤 내용은 인터넷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다. 검색을 하면 건강 관련 글 중 되게 유식하고 좀 있어 보이는 글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런 글들의 총 집합체라고 해야 할까? 굉장히 유용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