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각 혹은 손도장 4
인사동 작업실에 다닐 때 처음에는 토요일 몇 시간이 고작이다가 매일 직장처럼 나가기도 했다. 어느 날은 밤이 늦도록 전시장을 돌아보고 돌을 파면서 1~2년을 보냈다. 수제도장집은 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정도의 실력은 되었지만 미술이나 서예 전공자가 아니어서 한 줄 이력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일본 유학을 고민했다.
당시 전각 선생님의 스승님이 나라 대학 교수님이셨는데 종종 한국을 방문하셔서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게다가 일본어 전공자여서 일본어로 대화도 가능해 넌지시 물어보니 자신이 현직에 있을 때 오라고 권하셨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생업을 버리고 일본으로 떠나는 건 차마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 이후 작업실에 가는 것도 뜸해지고 생업으로 인해 시간에 쫓기면서 전각은 선물해야 하거나 지인의 부탁으로 간간히 파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경남 사천문화재단의 환경공모전에 다른 사람이 대신 냈던 작품이 수상을 하게 되었다. 전혀 의도치 않게 수상자 그룹전을 마치니 사천문화재단에서는 개인전을 열어 주겠다고 했다. 날짜를 정하고 며칠 전까지 작품을 보내주면 된다고 하는데, 전시회라니!
내 전각 작품이 전시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으나 망설이다가 포기하면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것 같았다.
최대한 시간을 벌어놓고 작품 주제를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전각 선생님과 동료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첫 전시회의 제목은 '나의 그리운 비린내'였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아버지 이야기와 남해의 멸치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준비했다.
마침 핸드페인팅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절반 이상은 전각 도자기 작품으로 했고 걸개를 이용한 작품과 직접 쓴 시를 새긴 작품을 메인으로 준비했다. 지방에서 연 전시회라 사람들이 붐비는 인사동과는 분위기가 달랐지만 생애 첫 전시회까지 열면서 성공한 취미 덕후가 된 것이다.
다양한 취미를 기웃거리면서도 전각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전각은 나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취미와의 콜라보를 통해서 점점 더 발전, 확장되고 있다. 개인전은 아니지만 매년 전각협회전에 작품을 내고 있으며 웹진에 전각 작품과 글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