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밀라노] 비행기는 언제 타도 좋은데.
향수와 화장품 냄새가 흘러나오는 면세점, 짐을 가득 실은 카트를 밀면 치이는 사람들,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륙을 기다리는 사람들, 지루한 표정으로 긴 의자에 앉아 충전선 꽂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그런 것들은 없었다.
코로나 시대에 공항은 조용하고 한산하고 멈춰 있었다. 밤 12시경, 그럴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다. 허나 시간 탓이 아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제멋대로 밝은 붉은 선이 실핏줄처럼 도시를 표시하고 있다. 저 아래에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다는 게 믿기지 않고, 그중 하나로서 방 안에 박혀 가장 작은 반경을 그리며 꿈틀대던 이가 나였다는 게 어색하다.
KF94 마스크의 코 부분을 자꾸 누르며 단단히 착용했다. 여기다가 항공사에서 나눠준 페이스 쉴드(썬캡처럼 생긴 투명한 그것)까지 쓰니 얼굴 부분이 답답하니 움직이기 어려웠다. 코로나 시대의 갑옷. (외부로부터) 나를 막고, (외부를 해할지 모르는) 나를 막는다.
그래도 밥은 먹었다. 모두가 잠자코 밥만 먹는 조용한 밥시간. 나는 오리엔탈 비건 메뉴를 미리 신청해두었다. 저녁식사로는 버섯 덮밥과 콩, 과일과 비건 빵이, 아침식사로는 버섯죽, 생과일과 과일 절임이 나왔다.
두꺼운 마스크와 페이스 쉴드는 숙면의 조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텅텅 빈 옆자리에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었다. 몸은 빨간 좌석 세 칸을 뒤적이며 야간 비행의 잠을 챙겼다.
밀라노로 가는 직항 비행기는 없었다.
10시간(인천→도하) + 3시간(환승) + 6시간(도하→밀라노) 일정. 도하에서 밀라노로 가는 비행기는 보다 작았고, 낮 비행이었다.
나를 위한 상징적 전세기. 어쩌면 영영 없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때만큼은, 옆자리에 꽉꽉 들어찬 승객 동행들이 그립지 않았다.
카타르 항공 스크린에는 꾸란이 탑재되어 있었다. 꾸란을 들으며 창밖을 본다.
구름이 양털처럼, 눈처럼 공중의 한 층을 채우고 있다. 구름 아래는 흐리겠지만, 구름 위는 더없이 맑고 밝다.
앞으로 마음이 흐릴 때, 마음의 반대쪽을 상상해 봐야겠다. 그쪽은 바람 없고 청명하고 어쩌면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목적지로, 멀리도 간다. 간절히 우기면 그것이 제때가 아니더라도 삶의 일부로 펼쳐진다는 건 코로나 시대 유럽행의 각오(가 되었)다. 말이 안 되더라도, 따지고 셈하는 것보다 그냥 하는 게 나을 때도 있(기를 바란)다. 비행기는 구름층을 통과하며 슬슬 고도를 낮추었고, 어두운 구름을 잔뜩 머리 위에 지고 있는 흐린 날씨의 밀라노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