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아직 어렸던 나이, 하지만 그때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겁부터 났던 서른두 살.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됐다. 전업주부가 되고자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준비하는 시험, 공무원 시험에 집중해보고자 회사를 그만뒀었다. 이 회사에서 내가 얼마나 더 오래 일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려지지 않는 내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지내던 나날이 이어졌고 공무원 공부를 하던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합격하는 걸 보며 나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했던 일이 해외영업이라 영어가 제로베이스가 아니었고 합격을 한 주변 지인들은 영어가 되니 시험이 어렵지 않을 거라 이야기했었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몇 달을 고민하다 회사 회식 자리에서 회사의 끝을 보고 퇴사를 결심했다.
하지만 퇴사 후 열심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사실 퇴사를 하던 시점 나는 임신 22주였다. 태교 겸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출산이 다가올수록 공부는 쉽지 않았고 나의 의지 또한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의지가 불타오르는 날은 타이머로 하루 7시간씩도 공부를 했지만 때로는 산모교실 때로는 친구를 만나며 하루를 통으로 날리는 날도 종종 있었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산후조리원까지 책을 챙겨 갔지만 피곤함 때문에 하루 인강 하나 보기도 힘들었다. 육아를 하면서도 아이가 일찍 잠드는 날은 밤에 인강을 들으며 공부를 이어 나갔지만 결국 아이가 돌이 되기 전 공부를 접었다.
퇴사 다음 날, 연차를 쓴 남편과 함께 퇴사를 축하하며(?) 데이트를 했다. 그때 갔던 달맞이의 카페.
가끔 내가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을 하곤 한다. 당시 다녔던 회사는 남초 제조회사라 여직원이 전체 직원의 10% 정도에 불과했고 결혼을 하고 회사를 다니는 여자 직원은 내가 두 번째, 임신을 한 건 내가 처음이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시점에 계속 회사를 다녔으면 육아휴직이 가능했을까요 라는 나의 질문에 총무부장과 나의 직속 상사는 단지 답을 얼버무릴 뿐이었다. 내가 회사를 계속 다니겠다고 육아휴직을 주장했다면 회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사실 이런 회사의 벽을 넘기보다는 피하기 위해 퇴사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두 달 넘게 매일 점심시간 입덧으로 토하며 다녔던 회사, 그 끝은 어쩌면 새로운 시작이 아닌 회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가끔 주부가 쓴 공무원 합격 수기를 보며 독하게 공부하지 못했던 나를 후회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