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업주부의일상] 집에서 놀아요

내가 뱉은 한 마디의 후회

by 겨울햇살

아이의 돌촬영이 있던 날이었다. 한옥 컨셉의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엄마가 아이의 이름을 붓글씨로 쓰는 촬영 장면이 있었다. 아이의 이름을 정성 들여 써내려 가는데 사진작가가 물었다.

“필체가 좋으시네요. 무슨 일 하세요?

퇴사를 하고 누군가에게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아, 집에서 놀아요”

나도 모르게 이런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집에서 논다니. 내 말을 들은 사진작가가 어디선가 전업주부를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을까? 내가 진짜 집에서 노는 사람이었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후 나의 자존감은 곤두박질쳤다.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 때 직업란을 채워 넣으며 괜히 주눅이 들었고, 신용카드를 하나 만들려고 해도 내 정보가 아닌 남편의 정보가 필요했다. 새로 만든 통장의 출금한도가 제한되어 만기 적금을 인출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직장인이었으면 간단한 서류로 끝낼 일이 쉽지가 않았다. 문득 나는 지금 뭘 하는가 다시 사회에 나갈 수 있을까란 불안감에 휩싸여 멍해지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 자존감의 저하 속에서 나도 모르게 ‘전업주부=집에서 노는 사람’이라는 틀 속에 나를 끼워 맞춰 평가했던 것이다.

사실 전업주부의 삶은 노는 것과 거리가 멀다. 특히 어린 아이가 있다면 더욱더. 가끔 아이가 어린 시절 기록해둔 하루 일과를 보면 내가 이렇게 힘들게 지냈나 싶을 때가 있다. 백일이 되기 전엔 쪽잠을 자며 아이를 돌보고, 시간 맞춰 이유식과 분유를 먹이고 또 그 와중에 모든 걸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남편의 저녁식사까지 열심히 준비했다. 두 돌이 지나 아이가 기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 시간은 거의 없었다. 낮잠 시간엔 집을 치우고 이유식을 만들기 바빴고 저녁에 아이를 재우고 나면 내가 너무 비워진다는 마음에 아직 남은 공무원 인강 수업을 듣거나 영어 공부를 했다. 그렇게 살아온 내 입에서 내가 집에서 논다는 말이 나왔다니, 스스로 분해서 억울했다.


우울함에 빠질 때면 워킹맘들의 퇴사 결심 글을 찾아보며 나의 생활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맞벌이가 이렇게나 힘든거잖아, 아마 나는 일을 했으면 계속 퇴사만 생각했을거야 하면서. 그리고 어느 날은 재취업 수기를 보며 나도 마음만 먹으면 다시 취업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그렇게 내 마음은 모순적인 상태였다. 이 모두 내가 지금의 위치에 대한 불안감에서 기인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멈춰버린 것만 같은 불안감 하지만 또 내가 아니면 내 아이를 누가 이렇게 사랑으로 키울 수 있겠냐는 위로감. 워킹맘, 전업맘 그 어떤 상황에 나를 대입해도 나는 안도감을 느낄 수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없다고 여기는 내 마음에서 비롯했다. 그 때의 나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무얼 위해 그동안 그렇게나 열심히 살려 기를 쓴걸까.


나의 상실감은 아이가 커가며 조금씩 회복되어갔다. 벽에 대고 이야기 하나 싶을 정도로 공허했던 나의 단어들이 아이의 입을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마라고 알려줬던 행동들을 아이가 하지 않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어준 음식, 내가 입힌 옷을 입고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다. 남편은 내가 집에 있어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대학원을 다닐 수 있게 됐다. 아마 맞벌이였다면 육아분담을 이야기하며 각을 세웠을 것이다. 내가 전업주부로 있기에 가질 수 있는 안정감, 나는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을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와중에 내가 언젠가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노는 게 아니다. 내가 이룬 나의 가족을 위한 일을 하고 있으며 여기서 얻는 행복은 승진을 한다고 돈을 많이 번다고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아니다. 커가는 아이를 지켜보는 행복,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나를 채우는 시간. 전업주부 3년 차에 이제는 약간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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