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전업주부의일상] 힘든데 힘들다고 말할 수 없어요
당연시 여겨지는 육아에 대한 무게
코로나 사태 심화로 인해 가정보육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이는 원래 올해 3월 입학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6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두 달 남짓 다니며 이제 어린이집에 적응했는데 다시 가정보육 시작이다. 가정보육 전에 어린이집에선 보호자에게 수요조사를 위해 연락이 온다. 긴급보육을 하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지 아니면 가정보육을 선택해 보호자가 아이를 가정에서 돌볼지. 집에 있는 나는 당연히 가정보육을 선택했다. 단톡방에 아이를 가진 친구들은 코로나로 인한 걱정과는 별개로 아이들과 하루 종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다.
아이를 하루 종일 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다. 자기 자식을 보는게 뭐가 힘드냐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정말 힘들다. 예능프로 삼시세끼를 보면 세 끼 밥을 차려 먹는 일이 생각보다 참 수고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이를 하루 종일 보는 건 삼시세끼 차려주기에 아이와 하루 종일 놀아 주기, 칭얼거림 받아 주기, 중간중간 청소, 설거지, 빨래하기도 포함된다. 아이가 어릴 때는 그저 내가 계획을 짜 챙겨줄 수 있었는데 아이가 크니 호불호를 살피며 비위까지 맞춰야 한다. 그렇기에 엄마들은 코로나 사태 혹은 방학으로 인해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 때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육아란 대놓고 힘들다고 말하기 어렵다.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건 나의 업무 방관인 것만 같다. 때로 힘들다고 말하는 엄마들을 비난하는 눈초리도 있다. 회사에 다니며 회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아이를 키우는 힘듦을 드러내는 건 엄마로서 못할 짓을 하는 것 같다. 힘들지만 힘들다고 말할 자유가 없는 것이다. 나 또한 코로나가 시작되던 시기 가정보육을 하며 기관에 보내는 엄마들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잘 하고 있는데 왜 저들은 그새를 못 참고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고 있을까 생각하며.
이런 나의 우월감은 내가 갖고 있는 좋은 엄마의 사회적 통념 속에서 나왔다.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나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고정관념. 아이를 볼 때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으면 행복하고 겨우 먹는 내 끼니는 라면 한 그릇으로도 충분하다 느꼈다. 알게 모르게 나는 힘들었고 어느 날은 세수를 하다가도 왈칵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지만 세상은 이를 당연시 여겼다. 엄마, 게다가 일을 하지 않는 전업주부란 타이틀은 때때로 내가 아이를 위한 부속물이 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힘든데 힘들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 하루도 참 수고했다고. 지금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 힘든 일이 맞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