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전업주부의일상] 나만의 시간

아이가 생기자 나만의 시간이 없어졌다

by 겨울햇살

아이의 백일이 다가오기 전이었다. 백일의 기적이란 말을 믿고 기다릴 정도로 출산 후 백일까진 밤낮없이 아이를 돌보느라 늘 잠이 부족했다. 새벽마다 깨는 아이를 돌본 후 나는 젖양을 늘리기 위해 새벽 유축을 하고 자곤 했다. 유축에 걸리는 시간은 20-30분. 쇼파에 앉아 유축기 규칙적인 소리를 들으며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티비를 보고 있으면 찾아왔던 잠은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나면 다시 잠이 들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결과적으로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좋지 못한 수면 패턴을 갖게 됐다. 신기하게도 남편은 새벽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신혼시절 예민한 성격이라 밤에 귀마개까지 끼고 자던 남편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한번 잠들면 업어가도 모르게 깊게 자는 성격이었는데 아이를 낳은 후 아이의 작은 소리에도 눈을 떴다. 출산 전 우스개소리로 아이가 울어도 나는 잠들고 남편이 매번 깨는 게 아니냐 걱정했는데 우려에 불과했다. 깨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 새벽까진 내가 아이를 담당하고 새벽 5시부터 출근 전까지 약 두시간 반 정도 아이를 돌보는 건 남편이 도맡아 했다. 그 시간이 내가 유일하게 맘 놓고 잘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기, 남편 앞에서 바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울적했던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퇴근하는 남편의 손에는 리디북스가 들려있었다. 식탁에 앉아 새로 산 리디북스를 세팅하며 어떤 책을 읽을까 고르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다 순간 울컥해 방에 들어가 잠시 마음을 고르고 나왔다. 당시 나의 모든 세계는 아이를 돌보는 것, 모유수유를 성공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남편은 새로운 취미를 생각할 여유가 있다는 게 억울했다. 그리고 출산 후 한 달쯤 됐을 무렵 남편은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은 꼭 각자의 자유시간을 갖자고 했다. 잠이 부족한데 자유시간이라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아이가 45일 되는 날 남편은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남편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자신이 없어질까 두렵다는 게 이유 중 하나였다. 그만큼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었기에 아마 아이와 처음 함께하는 시간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자유시간을 갖자는 건 남편 입장에서 보면 서로의 모습을 잃지 말자는 뜻일 것이다. 지금이야 아이가 어느 정도 컸기에 내가 원하는 시간에 친구와 약속을 잡아 나가는 일이 일상의 즐거움이 됐지만 그 무렵의 나에겐 자유 시간 자체가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아이가 잠든 시간만이 나의 유일한 자유시간이다. 낮잠이 들면 조용히 문을 닫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노력한다. 때로는 밀린 집안일을 하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거나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본다. 결혼 전 퇴근 후 친구를 만나거나 바로 귀가하더라도 내 몸만 씻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던 몇 년 전의 시간들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전업주부가 사회와 멀어짐을 느끼는 건 나만의 시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 거울을 제대로 볼 시간조차 갖기 힘들었다. 어린이집을 보내며 겨우 찾았던 균형은 코로나로 인해 다시 깨졌다. 일상적인 나의 자유시간을 언제쯤 제대로 갖게 될지, 어린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의 일상은 때론 아니 자주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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