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전업주부의일상] 예측 가능한 단조로운 삶

어쩌면 결국은 원하던 삶

by 겨울햇살

중 1 가정 시간에 자신의 미래를 적어보는 숙제가 있었다. 그렇게 먼 미래를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나는 어림잡아 20살에 대학 입학, 24살에 대학을 졸업, 2년 간 일을 한 후 결혼, 결혼 후 두 명의 아이 출산이라는 타임라인을 적었다. 밀레니엄이 오기 전의 시대였던 1999년, 그 당시의 관념으로 서른이 넘어 결혼할 줄 몰랐고 취업이 이렇게 어려울지도 몰랐다. 하긴 내가 스무 살이던 2005년에 방영한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가 작중 서른이었단 사실을 내가 서른 넘어 안 후에 놀랄 정도로 지금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세상의 풍파를 겪지 않고 갓 중학생이 된 아이의 머릿속엔 예측 가능한 삶의 지표만 존재했고 당시엔 많은 어른들이 그 예측 가능한 삶을 위해 산다는 걸 알지 못했다.


우리는 단조로운 삶을 지겨워한다. 영화처럼 특별한 만남, 그리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 등 밋밋한 일상에 한 획을 그어줄 일들을 기대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우리의 삶의 방향은 예측 가능한 미래를 열망한다. 무탈하게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일상의 연속. 내가 지금 보내고 있는 전업주부의 삶은 너무나도 예측 가능한 잔잔한 삶이다. 매달 남편의 월급으로 저금과 소비를 분배하고 매일 아이와 가정을 돌보는 삶. 때때로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을 가는 것 외에 특별한 일은 없다. 누군가에겐 너무 편해 보이는 삶일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나는 빠짐없이 가계부를 적기 시작했고 기록에 집착하게 됐다. 대학시절 한 달간 동남아 여행을 떠나면서 숙소도 잡지 않고 갔던 20대 초반의 나와 달리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는 시간 단위로 쪼개 여행을 준비하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예측 가능하게 지내왔던 대학시절까지의 삶과 달리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의 방향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그렇게 계획과 기록에 집착하게 되었던 것 같다. 매일 출근을 하고 그에 따라 정해진 월급을 받고 빨간 날 쉬는 삶은 어른이 되고 나니 생각만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며 공무원, 간호사, 선생님 같은 직업을 권하던 엄마에게 반항하던 10대 소녀는 어느덧 30대가 되어 안정적인 일상이 이어지지 않는 날이 혹여라도 오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엄마가 됐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예측 가능한 단조로운 삶을 위해 일하고 노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나는 적당한 시기에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어찌 보면 많은 걸 이룬 사람이다. 지겨움이 외로움이 되는 순간이 간혹 찾아오지만 그래도 일상의 작은 것들 이 나를 채워준다. 오늘과 내일, 지금과 미래가 그려지는 삶. 이 예측한 가능한 나날들이 결국 우리 가족을 지탱하는 근간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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