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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Feb 02. 2021

[자가격리] 코로나가 보여준 민낯

자신의 기준으로 해석하는 사람들


  사람이 주는 상처는 병이 주는 아픔보다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 확진자이거나 내가 자가 격리자가 되지 않았다면 코로나가 주는 정신적 아픔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격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추측으로 만든 기준을 토대로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예방 수칙을 지키지 않고 멋대로 행동한 사람으로 쉽게 결론짓기도 한다.



자가격리를 바라보는 각자 다른 기준


 친구 가족의 확진 소식을 접하고, 내가 접촉자의 접촉자라는 사실을 안 순간 혹시 모를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긴급 보육으로 등원시킨 아이를 하원 시키기 위해 어린이집에 갔다. 어린이집 방문 전 보건소에 문의하니 접촉자의 접촉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되며 어린이집에도 알리지 않아도 된다는 답을 들었다. 하지만 고민이 됐다. 만약 반대의 입장이라면, 혹시나 어린이집에서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선생님들도 미리 알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에 괜히 알렸다가 혼란만 가중시킬까 봐 걱정과 혼란이 뒤섞인 마음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접촉자의 접촉자인데 어린이집에 사실을 알려야 할까요?’


 순식간에 여러 댓글이 달렸다. 여론의 반은 굳이 알릴 필요 있냐는 의견, 그리고 반은 알려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사이 이런 답변도 달렸다.

 

‘알리냐 마냐 고민할 게 아니라 등원을 안 시켰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 글에 정보가 부족했던 것도 있지만 추측만으로 나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굳이 등원시킨 학부모로 취급받았다. 익명성을 담보로 답을 구한 건 나였지만 예상치 못한 댓글을 읽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접촉자인 나도 이런데 확진자라면 더한 추측과 비난을 받겠구나. 나의 상황보다 우선 친구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다음 날, 친구도 결국 확진 판정이 났고 그 날 오후 나는 보건소로부터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다. 가장 먼저 이 사실을 알린 곳은 아이의 어린이집이었다. 나의 자가격리로 인해 가장 염려가 되는 점은 혹시 모를 가능성으로 내 아이를 통해 어린이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자가격리 사실을 담임 선생님께 알리고 난 후 한 시간 뒤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님의 자가격리 소식을 공지사항에 올려도 될까요? 개인정보는 알리지 않고 다만 다른 학부모님들에게 이런 일도 있다고 말씀드리며 코로나가 가까이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 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평소의 나라면 바로 승낙을 했겠지만 친구의 사정을 옆에서 지켜보니 결국 어떻게든 나와 아이의 신이 노출되고 누군가는 필요 이상으로 불안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원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가능하면 선생님들만 아시고 따로 공지는 올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공지는 올리지 않기로 했다. 전염병을 예방하고자 하는 어린이집의 사정은 알지만, 나의 사정을 안 후의 대처상황을 지켜보며 사람마다 생각의 방향이 매우 다름을 느꼈다.    



내가 알고 싶어 하는 사적인 정보가 타인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

  

 지역 커뮤니티에는 친구의 확진과 관련한 개인 정보가 올라왔다. 속상한 마음에 게시글을 신고했지만 글이 삭제되지는 않았다. 사실 나도 주변에 확진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세한 인적 사항이 궁금했었다. 확진된 사람은 어디를 돌아다녔을까, 직업은 무엇일까, 아이가 있다면 어느 학교 어느 유치원에 다니는 걸까, 나랑 얼마나 가까운 곳에 사는 걸까 등등. 이번 일을 겪으며 최근 정부의 동선 공개가 예전만큼 세세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됐다. 사람들은 정부를 향해 코로나 확진자의 자세한 이동 경로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정부가 쌓아온 그간의 경험으로 필요한 정보만 알려도 충분하다는 결론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싶어 하는 사적인 정보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


 확진자가 사는 아파트, 다녔던 교회, 학교, 식당들. 나도 궁금한 마음으로 지역 커뮤니티에 들어가 정보를 찾아보곤 했다. 하지만 이제야 내가 단순한 마음으로 알고자 했고, 손쉽게 검색해서 알 수 있던 정보들이 누군가에겐 예민한 부분이란 걸 깨달았다. 같이 자가격리가 된 지인이 아이를 보내는 어린이집 원장은 나의 경우와 다르게 학부모의 자가격리 사실을 공지로 알렸다. 익명을 담보로 행했지만 결국 다른 학부모들의 추측을 통해 자가격리 중인 지인을 사람들은 알아냈고, 지인은 그들로부터 개인적인 전화를 받았다. 음성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진짜 음성이 맞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자가격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내 생각의 전환을 일으켰다. 내 자리에 대한 고찰, 좋게 봤던 혹은 좋지 않게 봤던 사람들에 대한 반전에 가까운 새로운 인식, 타인에게 갖는 지나친 궁금증이 일으키는 문제들. 또한 과거 계산적인 생각을 하며 지나쳤던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도 떠올랐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타인의 민낯이 보인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나에게 다가올 상황을 계산하기에 바쁘다. 나는 이번 일을 겪으며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 사람에게 실망하기도 했고, 의연하고 어른스러운 행동에 존경이 생긴 사람도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갖춰야 할 예의를 알게 됐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이 판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 왔을 때 무엇을 중요시 여기는지도 알게 됐다. 그렇기에 나쁜 상황이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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