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가족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친구는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었고 다음 날 나올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친구와 친구의 가족이 확진 판정을 받기 전 이틀간 같은 공간에 꽤 긴 시간을 머물렀다. 나는 밀접 접촉자의 접촉자였다. 만남 내내 마스크를 잘 쓰고 있었기에 서로 간의 전염은 없었을 거라 확신했지만, 친구의 확진 여부는 불투명했다. 친구의 확진 여부에 따라 내가 자가 격리자가 될 것임을 예상했다. 그 날 아침 우연히도 ‘한집에 한 사람 검사받기’라는 시의 캠페인을 알게 됐고 몇 시간 후 친구 가족의 확진 소식을 듣게 됐다. 안 그래도 검사를 한 번 받아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이라 혹시 모를 가능성을 대비하여 미리 선별 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친구의 확진 소식을 들었다. 친구가 그 간 방역수칙을 잘 지켜왔으며, 어떤 대처를 해왔는지 알았기 때문에 마음이 더 무거웠다. 코로나가 이렇게 내 주변에 가까이 다가올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친구의 확진 소식을 알고 나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혹시 모를 가능성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다행히도 나의 결과는 음성. 하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나는 밀접 접촉자가 되어 자가격리 대상이 되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통보 연락을 받았을 때 놀란 마음도 없었다.
접촉자 그리고 자가격리가 내 앞에 다가오기 전까지 나는 두 단어의 무게를 그리 크게 느끼지 않았다.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들, 자가격리 정도라면 한 번쯤 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경험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특히 요즘 사람들은 재미 삼아 자가격리란 말을 쉽게 입에 담곤 한다. ‘산타클로스가 자가격리 때문에 늦는다’, ‘자가격리 중이라 안 보이나 봐요’ 등등. 하지만 내가 접촉자로서 자가격리의 대상이 되고 나니 그 단어가 나의 일이 됐을 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다.
사실 한 때 농담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자가격리를 하면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거라 말하기도 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고 잠시 아이에게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게 재충전의 시간이 될 거라 생각했기에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현실로 다가온 나의 자가격리는 여러 가지 고민을 동반했다. 가장 먼저 아이가 걱정됐다. 어린이집엔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자가격리 기간 동안 아이와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엄마 껌딱지인 아이를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 것인가, 나아가 아이 돌봄을 위해 남편은 재택근무를 해야 하나 아니면 연차를 써야 하나. 차라리 남편이 자가격리라면 남편이 화장실이 있는 안방에서 나오지 않도록 완전히 차단하거나 내가 아이와 친정을 갈 것이고, 아이가 자가 격리라면 보호자가 필요한 아이와 내가 함께 집에 남고 남편을 시가에 머물게 하면 간단하게 처리될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자가격리의 대상이 되자 고민이 많아졌다.
친정은 모두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 그리고 시가도 자영업을 하셔서 코로나에 예민하고 시어머니의 몸이 좋지 않아 에너지 넘치는 4살 아이를 하루 종일 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오롯이 나와 남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두 개의 출장이 잡혀있던 남편은 일단은 회사에 사실을 알리고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은 내가 아이와 상호 마스크를 쓰고 아이를 돌보기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아이는 집에서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꾸 마스크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나를 찾았다.
자가격리에 대해 검색하다 보니 자영업자나 일당을 받는 사람에게는 자가격리가 나보다 더 큰 타격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쉬이 말했던 그 단어가 현실로 들어오자 확진자와 마지막 접촉일로부터 14일간 이뤄지는 2주 간의 자가격리가 어떤 사람에겐 삶을 위협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 또한 단순히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자가격리가 연결고리가 많은 삶 속에선 치명적임을 깨달았다. 쉽게 썼던 단어가 당사자에겐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이란 것, 이제는 그 어떤 것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