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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Aug 05. 2022

[그림책으로 글쓰기] 친구, 용기와 포기 사이

<잊었던 용기>, <안녕, 내 친구>를 통해 보는 친구

<잊었던 용기> 휘리 글, 그림/창비(2022)

<안녕, 내 친구> 샬롯 졸로토 글, 벵자맹 쇼 그림/웅진주니어(2021)     



사회적 관계의 시작 ‘친구’     



태어나자마자 온전히 주어진 가족 관계를 벗어나 처음 접하게 되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 바로 ‘친구’다. 우리는 항상 또래에 갈망한다.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나와 비슷한 연령은 친구가 되기 가장 좋은 조건이다. 친구의 기준은 나이가 듦에 따라 달라지지만 어릴 적 친구는 나의 생각과 몸의 자람이 비슷한 존재다. 성장의 단계에 따라 초, 중, 고를 거치며 다양한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 속에서 나와 통하는 이들을 찾고 좀 더 깊은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만난 친구는 나에게 때론 기쁨을 때론 슬픔을 선사한다. 친구와 함께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도 하고 친구와의 다툼 때문에 밤을 새우는 고민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친구 사이를 유지하는 개인의 방식은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며 생긴 문제를 다루는 바탕이 된다.     

 ‘친구’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친구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른 모든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과 연결될 것이다. 여기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두 권의 그림책이 있다.        



친구가 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해 <잊었던 용기>     



작은 오해로 인해 사람과 멀어지는 일은 흔하다. 대학 시절, 1년의 휴학 후 학교에서 마주친 지인과 눈이 마주쳤지만 데면데면한 마음이 앞서 먼저 모른 척 고개를 돌린 적이 있다. 이후로도 종종 스쳐 지나갔지만 그날 이후 서로의 위치는 모르는 사람과 같은 선상에 놓였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사람인데 찰나의 행동으로 아쉬운 인연을 한 명 놓쳤고, 그 후로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서로에게 없었다. 아마 양쪽 다 자신에게 그 정도의 사람이라고 속으로 단정 지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어른들은 쉽게 말한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친구에게 가서 같이 놀자고 말하고 놀면 된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른이 된 우리도 사람에게 가볍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아무리 벽을 쉽게 허무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고, 단순하리라 생각하는 아이들의 친구 사이에도 예민함이 존재한다.     


<잊었던 용기>의 주인공 소녀에게는 하교 후에도 함께 시간을 보낼 만큼 친한 같은 반 친구가 있다. 겨울 방학 후 그 친구와 눈이 마주쳤는데 어색한 마음에 눈을 피해버렸고, 그 후 둘은 서서히 멀어지며 ‘인사하지 않는 사이’가 됐다. 별다른 사건 없이 멀어져 버린 둘의 관계는 봄이 되도록 회복되지 않았다. 소녀에게 친구는 생각보다 마음을 준 존재였던지 무너진 우정에 괴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마음을 담은 편지를 친구에게 전달한다.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소녀는 친구에게 다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자는 답장을 받는다.      


단순한 아이들의 우정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곱씹어보니 얼마나 큰 용기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서로 싸운 뒤 화해하며 다시 친해지는 사이보다 계기 없이 멀어진 사이가 더 회복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어른이 된 나도 긴 공백 뒤 서먹해진 사이가 결국 인사하지 않는 사이로 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휘리 작가의 몽환적인 그림체를 통해 어린 시절 친구 때문에 겪었던 고민이 말랑말랑하게 다시 떠올랐다. 학창 시절 반이 바뀐 후 서먹해진 친구 때문에 섭섭했던 기억, 친했던 친구와 멀어진 후 서로 인사하지 않는 사이가 될 때의 외로움. 나에게도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는 한 때 가장 친했던 초등학교 시절 친구가 있다. 서로의 집에 놀러 가고, 좋아하는 이성이 누군지 고백하고, 함께 고민을 나누던 친구가 반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멀어졌다. 중간에 다시 인사하는 사이로 회복된 적도 있고 같은 동네에 살며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끝내 우리는 서로 인사하지 않는 사이로 남게 됐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친구 사이란 게 노력으로만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어릴 땐 그저 나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되지만 오랜 시간 이어지는 친구는 나와 통하는 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가 찾아올 거야 <안녕, 내 친구>      


    

<잊었던 용기>와 다른 시선으로 친구 관계를 바라보는 그림책도 있다. <안녕, 내 친구>는 친구란 어쩌면 새로운 친구가 생기면 잊혀 질지도 모르는 존재라 말한다. 이야기의 주인공 소년에겐 갈색머리의 친구가 있다. 둘은 자연 속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비가 오는 날이면 다락방에서 빗소리를 듣는 둘만의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갈색머리 친구에게 새로운 빨간 머리 친구가 생겼다. 갈색머리 친구는 소년과 함께 했던 놀이들을 빨간 머리 친구와 함께 했고, 끼어들 수 없는 둘을 모습을 소년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다. 소년은 멀어진 친구의 마음에 괴로워하며 온종일 울다 잠든 꿈속에서 또 다른 새 친구를 만난다. 꿈속에서 만난 새 친구는 나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주며 내가 하고 싶었던 놀이도 함께 한다.  


    


내가 마음을 주며 가장 친하다 믿었던 친구가 다른 친구와 더 친하다고 느껴질 때 큰 상실감이 마음을 덮치는 감정을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친구가 나보다 더 친하게 생각하는 다른 이가 있다는 치기 어린 마음이 앞서 나오면서 함께 공유하는 우정과 추억의 무게는 더 이상 둘 사이에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아마 이러한 감정은 태어나 처음 겪는 타인에 대한 소유욕일지도 모른다. 사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이런 감정을 겪을 때면 허무함을 느낀다. 모든 관계에서 내가 마음속에 정해둔 타인의 친밀도에 대한 순위가 예상과 다름을 알 때 우리는 혼동을 경험한다. 우정보다 공부가 더 중요한 친구, 나에 대한 우선순위가 내려간 듯 보이는 연인, 가족보다 일이 중요해 보이는 부모님의 모습 등 내 마음속에 정해둔 타인의 순위가 어긋날 때 우리는 불안감을 느낀다. 여기서 그 인연을 붙잡고 갈 것인지 아니면 보내줄 수 있는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      


<안녕, 내 친구>의 소년은 아마 시간이 지나면 그 친구를 잊고 아무렇지 않을 거라 이야기한다. 아마 모든 일이 그러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뾰족했던 마음이 무뎌지고, 큰일이라 생각했던 일은 작아진다. 최은영의 단편소설 <꿈결>에서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의 삶이 학교라면 한 학년은 15년씩 나눌 수 있다고. 태어나서 열다섯까지가 1학년, 열여섯부터 서른까지가 2학년……. 몇 년의 시간을 보낸 우리는 그저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에 불과하며 헤어지더라도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마치 6학년이 되면 2학년 때 친구가 희미해지듯 말이다.’       



관계에 대한 노력과 포기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두 권의 그림책은 마음의 방향을 다르게 알려준다. 지금 잡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잊었던 용기>가, 나를 힘들게 하는 친구 때문에 힘들다면 <안녕, 내 친구>가 더 마음에 와닿을 것이다. 모든 관계에선 때론 한 뼘의 노력이 때론 한 뼘의 포기가 필요하다. 둘 다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노력이 필요했던 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보이기도 하고, 나를 힘들게 하면서까지 집착했던 관계에 대한 후회가 보이기도 한다. 지난날을 함께했던 사람들은 내 인생의 궤적에 남아 좀 더 현명한 결정을 하도록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삶을 시작하는 아이에겐 이 어려운 길에 대한 약간의 조언을, 아직도 친구를 비롯한 사람이 어려운 어른에겐 적절한 균형을 맞춰가는 마음의 동력을 <잊었던 용기>, <안녕, 내 친구> 두 권을 책을 통해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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