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전업주부의일상]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을 때
나에 대한 질문이 사라질 때
아이가 점점 크면서 나만의 시간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동안 멈춰 있던 인간관계도 시작되며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아이 때문에 알게 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시작하며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가 어릴 때 알던 워킹맘들은 돌이 지나고 복직을 했기 때문에 최근 만나는 동네 이웃은 대부분 전업주부이다. 아이 등하원을 하다가 혹은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아주다 마주치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더라도 신기하게 상대방에 대한 물음은 없다. 아이가 잘 크는지, 지금 이 시기에 아이에게 해주는 나의 행동이 맞는 건지, 좋은 육아템은 없는지와 같은 내가 빠진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런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나이다.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엄마와 좀 더 친밀감을 느끼고 이야깃거리가 늘어난다. 그 사람이 예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관심사가 있는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오가다 만나는 이들이 이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조금 친분이 쌓여 기회가 생기면 이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질문하곤 한다. 그러면 그들은 때로는 신이나 자신이 예전에 했던 일을 이야기해준다. 아이가 빠진 이야기를 하고 나면 한층 더 그 사람이 가깝게 느껴진다.
새로 참여하게 된 모임의 참가자는 나를 제외하곤 모두 직장인이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사적인 대화를 할 일이 생기면 상대방의 직업이 화제가 된다. 어느 날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직업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다 한 명이 나에게 뭐하시는 분이냐고 물었고 나는 주부라 대답했다.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를 제외하곤 미혼의 남성이었기에 주부라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할 소재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아이도 있다고 말하니 ‘아이들이 참 활발하죠’, ‘키우는 게 힘들겠어요’라는 말은 건넨다. 그 후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내가 참 재미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최근 떨어진 나의 자존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전업주부의 삶이 뻔해서일까 그 일을 하면 어떤지 왜 하게 됐는지 그 누구도 물어보지 않는다. 다같이 알아가는 자리에서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건 조금은 서글픈 일이었다.
직업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조직을 떠났을 때의 나는 결국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 모습이 초라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는 나를 찾아가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생각하려 한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게 참 쉽지가 않다. 어느 날 Lizzo의 Juice 가사를 보다 순간 울컥한 적이 있다. 타인이 나를 궁금해하지 않더라도 내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나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는 것. 누군가를 궁금해하는 것보다 그 질문을 나에게 돌려 나를 알아가는 것이 진짜 나를 위한 오롯한 삶의 성과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