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용기를 내어 연락을 했을 땐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술을 마신 건 아니었다. 마셨더라면 좋았을까. 술기운이라는 변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지금보다는 덜 부끄러웠을 것이다.
나는 구구절절한 메시지를 보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이불속에서 천장을 오래 바라보다 휴대폰을 껐다 켜기를 반복했다.
답장이 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다시 하루가 더 지났다.
부끄러움이 조금씩 가라앉던 날, 점심이 한참 지난 시각에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
"응."
그게 다였다.
삼일 동안 마음 안에서 견뎌낸 출렁임에 대한 응답치고는 너무 짧았다.
무성의하다는 말조차 그 한 글자에 붙이기엔 과했다. 오히려 구구절절했던 쪽이 나였다는 사실만 남았다.
나는 그 '응'을 여러 번 읽었다.
'보자'는 뜻일까, '그만하자'는 뜻일까. 아니면 그저 가장 무해한 모음과 자음의 조합이었을까.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들고 나오는 길이었다.
한 입 베어 물려다 입 안에서 그 단어가 뭉개질 것 같아 샌드위치를 그대로 휴지통에 던졌다.
편의점 앞 골목으로 봄바람이 들고 났다.
한 여자가 옷깃을 여미며 휴대폰에 대고 뭐라 뭐라 목청을 높여 말을 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닿지 못한 그 말들이 바람과 함께 흩날리고 있었다.
시차를 두고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번 주 토요일, 시간 돼."
일방적인 말투였다.
이런 식의 연락이 싫었던 것 같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똑같이 답했다.
"응."
그 순간 며칠 전 그녀의 단마디 문자가 이해됐다.
모든 말의 가장자리에 서서 모든 말들을 담아 답을 했으리라.
그날 이후 나는 토요일을 준비했다.
일기예보를 자주 확인했고, 예전에 함께 갔던 카페의 영업시간을 검색했고, 옷장 속에서 셔츠 하나를 꺼내 걸어두었다.
재회란 게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 간질거리는 감정이 며칠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02
토요일 후 토요일 그리고 또 토요일이다. 그날이 내 몸 어딘가에 붙어 있는 것 같다.
손끝이나 눈동자의 가장자리, 아니면 구두의 뒤축 같은 곳에.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그녀가 입었던 셔츠 색을 떠올려 보았다.
하늘색이었나, 연청에 가까운 회색이었나.
점심시간, 커피를 사러 나왔다가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새로운 메시지는 없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녀의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했다.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사람이 사라지는 방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탈퇴한 계정처럼 내 일상에서 빠져나갔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 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보다 토요일의 기억이 흐려졌다는 사실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처음 그녀와 헤어졌던 날에도 그랬던 것 같다.
현관 앞에서 나는 신발을 벗지 않은 채로 한참을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