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

00:46 am

by 저나뮤나

고시원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좁고 낡은 복도를 지나 305호에 도착했다. 문을 열기도 전에 안쪽 공기가 느껴졌다. 오래되어 칠이 벗겨진 더러운 플라스틱 문 손잡이를 돌리는 손끝에 싸늘한 기운이 내려앉는다.


작은 방이다. 침대 하나로 꽉 차버린 그 방에선 몸을 돌릴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책상 위에는 내 이름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아래에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여기선 문을 잘 닫아야 해요.


나는 종이를 읽고 별생각 없이 넘겼다. 누군가의 농담이겠거니 했다.


이사는 조용히 끝났다. 짐은 간단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콘크리트의 서늘한 냄새가 올라왔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옆방에서 알 수 없는 노랫소리가 가끔 문을 타고 들어왔다. 이 고시원이 얼마나 조용한지 모른다며 강조하던 고시원 실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시원 실장은 고시원을 둘러보러 온 날에도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강조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으면 유난히 낮아진 목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그가 어디선가 먼지를 털고 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혈색이 돌지 않는 손톱, 눈 밑에 내려앉은 피로, 단정하지 못한 머리.


"방이 있긴 있는데... 305호... 음... 그 방 좀 오래 비어 있었어요."


그가 처음 내게 그렇게 말했다. 특별한 설명은 없었다. 나도 애써 묻지 않았다. 고시원이란 곳은 애초에 너무 많은 사연이 모여드는 곳이다.


이사한 날 밤 누군가 문을 흔드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철컥- 하는 소리가 났고 낡은 문고리가 살짝 흔들렸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는 없었다. 인기척도 없었다. 복도에서 누가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지만 문을 열어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듣지 못한 척 다시 눈을 감았다.


그 다음날 밤에도 같은 시간에 누군가 문을 흔들었고 그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번엔 문고리가 조금 더 길게 흔들렸다. 이번에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듣지 못한 척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에 복도 CCTV를 확인해 달라고 실장에게 요청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방, 좀 그래요. 예전에 살던 애도 그런 소리 들었다고 했거든요. 근데 아무것도 안 찍혔어요. 밖에서 바람이 새어 들어와서 그런 거 같아요"


그날 밤, 나는 문 옆에 휴대폰을 두고 녹음을 켜둔 채 밤을 지새웠다.


00:46 문고리 소리. 철컥. 툭. 또 철컥. 00:49 아무 소리 없음. 00:52 낮게, 누군가 숨을 들이쉬는 듯한 소리.


바람 소리가 아니다.


넷째 날 밤, 나는 문 앞에 앉아 있었다. 방 안 전등을 끄고 휴대폰 조명도 껐다. 가만히 기다렸다.


00:46, 철컥하고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문손잡이가 1/4쯤 돌았다. 아주 천천히. 그러더니 멈췄다.


나는 숨을 삼키고 문 밑 틈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사람의 것이라기엔 너무 가늘고 길었다. 그 긴 것이 문 밑 틈을 통해 305호 안으로 길을 내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도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00:46 철컥하는 소리를 신호로 문손잡이가 돌아갔고 그 가늘고 긴 것이 문 밑 틈을 통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점점 말이 줄었다. 잠도 잘 수가 없었다.


그즈음부터 환청이 들렸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누가 방 안에서 나직이 숨을 쉬는 소리. 때로는 문 너머에서 옷이 스치는 소리도 들렸다.


어느 날 아침 책상 위에 물컵이 쓰러져 있었다. 컵 옆에는 젖은 메모지가 있었다. 번진 글씨가 희미하게 읽혔다.


문을 열지 마요.


그 후 나는 외출을 줄였다. 사람과 말하는 것도 줄였다. 핸드폰도 자주 꺼두었다. 밤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고, 어김없이 00:46, 철컥하는 소리가 반복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문 앞에 앉아 있다. 오늘은 처음으로 문 반대편에서 또렷한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줘."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이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가 문 안에 있는 건지, 밖에 있는 건지, 그조차도 잘 모르겠다.


오늘 밤 누군가 문을 통해 들어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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