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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Aug 31. 2023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지음

KOR 305 KIM JIHYE

나무에 비유를 하는 게 적당할지 어쩔지 모르겠는데. 나무의 모습은 이렇다. 땅 위로 드러난 줄기며 나뭇가지, 잎사귀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땅 아래로 들어가 보면 나무 전체를 지탱하는 뿌리는 하나다. 이처럼 차별도 실제 세계에 드러나는 모습은 성별, 종교, 인종, 사회경제적 위치, 학벌, 신체적 조건등으로 다양하지만, 차별의 뒤에 존재하는 뿌리는 하나다.


후려쳐서 거칠게 말해보면 이런 거다. 너와 나는 다르다. 생각이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다른 것을 이유로 단차가 만들어진다. 생각이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단차로 인한 위계가 생겨난다. 생각이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위계를 기반으로 한 질서가 생겨나고 그 질서가 사회에서 고착화된다. 차별이 생겨나고 차별이 정당화되는 사회가 된다. 생각만 해도 갑갑해지는 구조로 차별은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그 세를 키운다. 지금 하는 얘기는 새로운 발견 같은 것이 아니다. 그냥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의 얘기이고, 누군가 이미 했을 법한 얘기다. 차별에 새로운 것은 없다. 그 새로울 것 없는 차별은 바퀴벌레처럼 인류의 역사에서 참으로 오래도 살았다.


그러다 보니 뿌리는 하나다.라고 말은 했지만, 마치 뿌리를 뽑아버리면 일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시작은 했지만. 뿌리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깊고 단단하고 튼튼해서 뽑아버리자 한다고 해서 간단히 뽑아버릴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다. 게다가 문제는 뿌리에만 있지 않다. 이 든든하고 질긴 뿌리 위에 자라난 구체적인 차별의 문제도 현실에서 다루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차별을 끝내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드러난 부분들을 다루는 동안 뿌리는 계속 깊이를 더해가고, 뿌리를 건드리는 동안 구체적 현실이 숨어버리는 식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차별의 문제는 다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뿌리든 잎사귀든 건드려져야 한다. 지속적으로, 영리하게, 때로는 거칠고 황당할지라도 차별의 문제는 반드시 다루어져야 하고 더 이상 논의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수준으로 차별의 문제는 작아져야 마땅하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인간의 생각은 앞서 언급한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완성한 곳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고착화된 질서가 불합리하고 괴기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질서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움직임을 만든다. 그렇게 차별의 역사는 반차별의 역사과 얽혀서 지금까지 왔다. 노동운동, 노예해방, 동학운동, 여성해방, 젠더 해방, 계급해방...


차별이 옳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지금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회 전반의 차별적 구조를 알아채야 한다. 차별을 하는 쪽이라면 자신의 하는 행위에 대한 의미를 알아차리고 행동을 수정하기 위해서, 차별을 당하는 쪽이라면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향유하기 위해서.


아니다. 이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냥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 복잡한 상황에 대해 간단명료한 답을 던져주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나니 그 시작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알지 못해 차별을 하기도, 차별을 당하기도 하는 일상적 생활과 상황에 물음을 던지고 새로운 질문을 제공하는 책. 어렵지 않지만 가볍지 않은 책.


날을 벼리듯 차별에 대해서는 생각을 좀 날카롭게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차별은 나쁘지'에서 끝나지 않고,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것들은 그 즉시에서 실천하는 결단도 필요하다. 거기에 더해 지속적으로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디쯤인지를 살펴보는 수고도 필요하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집요함도 필요하다. 그렇다. 차별이 없는 세상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쉽지 않은 길에 시작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책을 만나서 반갑다. 그리고 이 책이 한국 사람이 쓴 한국책이라는 사실은 더 반갑다. 나는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아. 선량하긴 했으되 차별주의자였어.라고 답해 준 책.


"Nobody's free until everybody's free." by Dr. Martin Luther King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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