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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Jun 06. 2024

총이 있어요 (1)

도서관 극한직업 (3 .1)

별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아기들 낮잠 시간 전에 스케줄 돼있는 스토리타임은 늘 그렇듯 시끌벅적 지나가고 있었다.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찾는 사람들, 복사할 서류를 들고 온 사람들, 도서관에서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책을 찾는 사람들. 늘 보던 풍경으로 채워진 아침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고등학생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무거운 듯 힘겨운 듯 앞을 지나간다.


'오늘 쉬는 고등학교가 있던가?'


하고 짧게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공공도서관에 누가 오든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만큼은 도서관 업무에 익숙해지던 중이었다.


점심때가 되자 유모차에 탄 아이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간다.


"잘 가! 좋은 하루!"


유모차 너머로 그 남자아이가 보인다. 사서들이 앉은 테이블을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다.  


'아직도 있었네.'


청소년 담당 사서가 나선다. 남자아이에겐 이미 너무 작아져버린 아동용 책상에 앉아 사서와 남자아이가 대화를 나눈다. 한참을 대화를 나누던 사서가 자리에 돌아온다. 남자아이가 사서를 따라온다.


"총이 있어요."


잠시 침묵하던 사서가 말한다.


"아까 테이블에서도 얘기했는데, 계속해서 총이야기를 하면 곤란해. 일단 공공장소에서 어울리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은 이해할 테고, 만약에 농담을 하는 거라면 하나도 재미있지가 않아. 총이야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사서의 단호한 반응에 남자아이의 시선이 흔들린다.


"총이야기를 계속하면 오늘은 이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밖에 없어. 무슨 말인지 알지?"


남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아이의 흔들리던 눈빛은 몸 전체를 흔들고 있다.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몸을 홱 돌린 아이가 등을 보이며 도서관 반대쪽 코너를 향해 비틀비틀 걷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조용히 시선을 나눴다.


'이거 뭐야? 진짜야?'


미국에서 총이 있다는 이야기는 한국에서 총이 있다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한국에서야 나 총 있다 하고는 주머니에서 엄지와 검지로 만든 손가락총을 짜잔 하고 꺼내 들고는 와하하 다 같이 웃겠지만, 미국에서는 총이 있다고 하는 얘기는 어떤 경우에도 웃긴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정말 총이 있을 수 있다.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남자아이는 도서관 구석구석을 쥐 잡듯 훑고 있었다. 불안해 보이기는 했지만 가이드라인에 위반되는 행동은 아니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눈으로 아이를 좇고 있었다.


두 시간이 넘게 도서관을 훑던 아이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재빠르게 문밖으로 사라졌다.


이미지출처 : https://kr.123r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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