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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Feb 15. 2024

내가 낸 세금이 얼만데! 앙!

도서관 극한직업 (2)

"Do you have any idea how damn much tax I'm shelling out? And you're just sitting there collecting a paycheck on my dime? (내가 낸 세금이 얼만데! 내 세금으로 지금 월급 받고 일하는 거 아냐! )


이런 종류의 막무가내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독특한 병증이 아닌가 보다. 이역만리 떨어진 미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왜 이런 일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날까 생각하다 보면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이 한국 고유의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람들은 시공을 가리지 않고 굳이 집밖으로 나오는 수고를 하고 저런 못난 짓들을 서슴없이 시전 한다.


못난 자의 눈을 깊게 바라보며 오늘도 조용히 말한다.


"I'm paying taxes, too" (저도 세금 냅니다)


그리고 그 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마음으로 전한다.


'아마도 당신보다 내가 내는 세금이 더 많을 겁니다. 세금을 낸 사람이 안 내는 사람을 막 대해도 된다는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당신보다 세금을 많이 내는 나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되는 건가요? 그런 못되고 못난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나는 겁니까.'


그 사람에게 절대 가 닿지 않으리라. 나는 눈을 천천히 깜빡인다.


어떻게 그렇게 차분하게 응대할 수 있는 거냐고 묻는 동료들도 있지만, 나의 "비밀"병기는 비밀도 아니다. 내가 외국인 노동자라서 그렇다.


영어로는 아무리 욕을 먹어도 한국말로 아이씨- 들었을 때의 감정도 일지가 않아서 그렇다.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현실감이 많이 떨어진다. 그러니 나한테 영어로 쌍욕을 해도 타격감이 별로 없는데, 상대는 그것을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여전히 차분하다.


"It's all funded by the taxes I pay!!!" (내가 낸 세금으로 여기 다 운영되는 거잖아!!!)


나의 차분한 태도에 상대가 언성을 다시 높인다.


"Yes, indeed. I'd appreciated it if those funds were used correctly, as intended." (그렇습니다. 목적에 맞게 잘 사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도 나는 차분한 눈빛을 보내며 길길이 날뛰는 이용객을 상대했다. 자신이 낸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만 하고 타인의 시간과 감정이 소비되는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을 상대했다. 아마 그는 화내지 않는 나를 보고 약이 올랐을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따로 있었지만, 그 사람의 귀가 닫혀있다는 것을 알기에 전할 노력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자각할 정도의 감정적 민감성이 있다면 나에게 이렇게 대하지도 않았겠지.


공공을 대하며 일을 하다 보니 공공에 대한 신뢰를 자꾸 잃게 되는 일들이 생긴다. 사람이 싫고 지겹다는 마음이 생긴다. 싫고 지겨운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이 생긴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그래도 내일이 되면 나는 또 출근을 할 것이다. 새로운 하루를 살기 위해. 내가 낸 세금이 잘 사용되는 현장에서 뿌듯함을 느끼기 위해. 싫고 지겨운 사람들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 확인시켜 주기 위해 다시 직장에 나와 일을 할 것이다. 결국 막무가내는 친절함과 차분함에 압도당할 것이라는 당돌한 생각을 가지고. 영어로 아무리 무례하게 대해봐야 타격감 제로인 비밀 병기를 잘 장착하고.


그래도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제발 내가 낸 세금으로 너 월급 받는 거 아니냐는 그 뻔한 라인을 사용하지 말아라.


나도. 세금.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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