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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Aug 07. 2024

유한 안에 갇힌 무한

바늘과 가죽의 시 / 구병모 소설

이보다 이야기의 제목을 더 잘 붙일 수 있을까. 구병모 작가님의 소설, 바늘과 가죽의 시(詩)는 비릿하고 아릿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이야기를 읽고 나면 이 압축적이고 자유로운 이야기의 제목은 "시"외에 다른 단어로 표현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바늘과 가죽의 시"는 은유와 표상으로 가득한 시, 시(詩)가 맞다.  


그 옛날 구두장이 부부를 돕던 요정들이 있었다. 부부는 자신들을 돕는 요정들에게 고마웠고, 부부는 요정들의 몸에 꼭 맞는 옷과 신발을 만들어 요정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한다. 요정들은 그 옷과 신발을 신고 구두장이 부부를 떠나 인간세상으로 들어온다.


자신들이 무엇인지, 언제부터 존재한 것인지, 언제까지 살게 되는 것인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계획 없이 시작된 인간세상 속에서 그들은 늘 어딘가에 마침표를 찍고 사라지는 인간과는 달리 자신들에게는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유한 안에 갇힌 무한의 시간이 시작된다. 무한을 담아내지 못하는 유한 안에서 각자의 길을 찾기 위해 요정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흩어진다.




유한의 앞에는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  


하나는 유한하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한하기 때문에 허무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소중하고 가치 있다지만 동시에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허무하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은 결국에는 사라진다.


자연스럽게 인간은 무한과 영원에 대해 생각한다. 끝이 없는 시간은 허무로 종결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한을 살고 있는 요정 얀도 허무하기는 마찬가지다. 영겁을 살아내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생사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인간의 세상 속에서 무한의 존재는 의미를 잃는다.


유한에 갇히 무한은 허무로 연결된 필연이 된다.


의미를 찾아 헤매는 인간의 몸을 입는 일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필연의 허무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 끝없이 고개를 쳐들고 숨을 쉬는 일은 고단하다.


얀과 같은 시간을 지내온 요정 미아는 그 고단한 일을 대면한다. 사랑을 선택한다. 진부해 보이는 사랑타령은 필사의 노력이고 용기 있는 결단이 되어 미아의 무한한 삶에 의미를 더한다. 처해진 운명에 압도되지 않고 미아는 그 옛날 달빛 아래서 구두를 지어냈듯이 자신의 삶을 지어내는 쪽을 선택한다.  


어쩌면 유한이든 무한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의미를 확정하는 것은 유한도 무한도 아니기 때문이다. 유한에게는 무한을 담지해 낼 능력이 없고, 무한에게는 유한의 증발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 짧고 가벼운 이야기 속에 이런 무게를 담아낼 수 있다면 그 이야기는 시(詩)일 수 밖에 없다.




바늘과 가죽의 시 詩. 이런 멋진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시간을 들여 천. 천. 히. 글자 한 자 한 자 띄어쓰기 한 칸 한 칸 읽어 내려가는 일은 정말이지 "기쁨"이다.




-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할 줄 아는 일은 그것뿐이었기에, 그 무심함과 무지로 인해 더욱 빛나던 아름다움을 기억한다고. 가죽과 가죽을 바늘과 실로 잇는 행위는, 우리에게 있어서 숨 쉬는 것이나 물을 마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고. 무두질이 잘 되어 싱그러운 냄새를 풍기는 가죽에 바늘을 대는 순간, 바늘은 저절로 노래를 불렀다. 노동은 영원한 이명과도 같이 그들에게 달라붙은 것이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듯 일하는 것이 존재의 몫이었다. 목소리만이 아닌 온몸의 노래. 구두에 새겨진 한 땀의 스티치마다 하나의 음계였고, 한 켤레의 구두는 왼쪽과 오른쪽이 만나는 화음이었다.


- 그가 보내온 시간의 의미와 이유가 바로 그 찰나의 도약에 있는 것 같다. 가볍고 심상한 몸짓에서 위태로움과 쾌감이 심지에 도달한 불꽃처럼 터져 나오고, 천 년을 살았어도 깊게 느껴본 적 없던 격정의 포말이 미아를 덮쳐온다.


- 그러니 눈앞에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모든 것은 찰나의 반복이자 지연될 소멸의 결과물이다.


구병모 소설 : 바늘과 가죽의 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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