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학 - 우연과 필연의 선택
원래 우리 아버지는, 내가 본인의 동창 교수님이 계시는 지방 국립대의 약학과를 가기를 원하셨다.
대체 왜 약학에 꽂히셨나 모르겠는데 초, 중, 고 그래도 괜찮게 성적이 나왔던 나는, 우리 고향 국립대 약학대나 의대는 능히 붙을거고, 아버지 친구가 교수로 있는 그 학교에서는 장학금에 이후 해당 교수님이 장래를 보장(?) 해 줄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아버지는 하고 계셨다.
그런데 나는 그 때 한 참 고교비평준화 반대 운동에 꽂혀 있었고, 나름 내 고향 소도시 춘천의 유명 고교생 선동가가 되어 있었다. 성적은 자연스럽게 떨어졌고, 거기다가 내 지망학과는 한양대 건축학과였다.
보수적이셨던 우리 아버지는 내 한양대 원서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시면서, 서울대 아니면 기집애가 타지에 살게 할 수 없으며, 강원대 약대로 진학하라는 명령을 내리시고 직접 원서 접수를 하셨다.
무의식의 반항이었는지, 난 수능을 정말 엉망진창 망쳐버렸다. 의도했던 건 아니었다. 정말 망쳤고, 난 말도 안되는 점수를 받아 당시 전기를 떨어졌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아주 슬프거나 낙담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난다.
재수를 할래? 하는 부모님 제안에 난, "아니오. 예전부터 프로그래밍, 컴퓨터를 좋아했으니 집근처 후기대학의 전자계산학과를 지원하겠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는 너무 실망하신 상태라 니 마음대로 해라~ 모드셨고 난 무난히 후기시험을 봤고 4년 장학금을 받고 차석으로 그 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게 내 모교 한림대학교 전자계산학과 입학 스토리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잘 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좋은 선배들을 만났고, 프로그래밍의 매력에 빠질 수 있었다. 아주 나중에 아버지에게 그 때 왜 전산과는 반대 안 하셨냐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생때 비평준화 반대 운동의 핵심 세력이 되고, 나서는 거 좋아하고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면 빨갱이, 운동권이 될 게 분명하다고 생각을 하셨었다고 했다. 그래서 정말 그걸 뛰어넘는 학교가 아니라면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곳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셨다고.. 전공은 아무 상관 없었다고.
아주 나중에 우리 아버지의 판단은 큰 오산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우연같은 대학입학, 그 후로 흥미진진한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