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흔히들 부모님들 한탄 중에,
“너랑 또~옥 같은 자식을 낳아봐라”라는 저주(?)가 있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나는 문득문득 과거 내 행동과 eX-boss를 떠올리면서 굉장히 내가 철없었구나. 인간적으로 미안했구나 라는 자각을 할 때가 많았다.
- 과거 회사가 사실 존폐의 위기였다. SI를 해서 연명하고 있었는데 한쪽에서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서비스를 꾸준히 만들고 있었다. 그때 대표를 ‘허황된 꿈이나 꾸는 사람’으로 매도한 적 있었는데, 물론 그 매도세력 편이었다. 그게 Daum 메일이었고 카페였고, 다른 많은 서비스들이었다.
- 창업가의 후배, 가족 동원을 엄청 뒤에서 씹었던 순간. 당시를 돌아보니 생존 방식이었다. 우수한 인력 구인이 한계가 있을 때 학연, 혈연은 저렴하게 우수한 인재를 참여시킬 수 있는 수단이었다.
- 나는 당시 인트라넷을 거의 혼자 만들다시피 해서, 크리티컬 정보도 접근이 가능했었더랬다. 사실 보면 안 되는데 우연히 시스템 오류로 새로 조인한 임원 월급을 보고 정말 굉장한 상실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아니 초기 그 쌩고생을 해서 회사를 키워 왔더니, 대기업, 외국기업, 언론사에서 사람을 데려와서 위에 꽂아? 거기에 연봉은 내 연봉의 몇 배? 돌아보니 그때 창업자도 스케일업 경험이 없었고 전문가들이 필요한 순간이었고 초기 지분도 스톡옵션도 없는 상황에서 그 사람들을 모셔오기 위해서는 연봉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 한 번은 내 보스가 신규 프로젝트에 불러줘서 들뜬 마음으로 조인했는데, 아.. 왠지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자존감과 스스로 잘난 맛에 살았던 나는 몇 달 만에 못해 먹겠다고 하고 나와버렸다. 시장에 공개된 서비스를 만드는 일은 경쟁사와 경쟁해야 하고 고객이 미처 모르던 것 까지 만들어야 한다. 팀으로 각자 모두 최선을 다해도 이길까 말까 한 사업이고 각자 최고를 해야 하는 일인데, 나이브했던 거였다.
- 한 번은 부서이동을 지원했고 당시 보스는 굉장히 쿨하게 ‘가라’ 고 해줬었다. 그때 난 되게 서운했었다.
아니 내가 이 만큼 기여했는데 날 안 잡아?
현재 누가 나간다고 하면 나는 안 잡는다. 잘 가라! 대체 뽑을 시간만 다오. 왜냐면 마음이 이미 떠난 사람은 가능한 한 빨리 내보내는 게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는 맞는 말이다. 당신이 없어도 그 회사, 그 팀은 당연히 굴러가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 고객은 다 소중한 것은 아니다. 나쁜 고객도 존재한다. 제대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과도한 요구를 하는 고객들. 각 종 어뷰즈를 창의적으로 해대는 고객들. 세상에는 호갱님만 있는 게 아니다. 호구 서비스 제공사라는 것도 있는 것이었다. 고객이 요구하는데 비용 때문에 쉽게 못하던 일들을 너무 쉽게 봤었더랬고, 고객이 원하니 해야 하지 않냐고 핏대를 올리던 기억. 고객도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
- 이 건 창업하기 훨씬 전에 깨달은 건데, 사실 마음먹으면 못 만들 소프트웨어란 없다. 상사나 비개발 직군 리더가 이거 이거 써보면 어때요? 할 때, 그거 만들면 되죠. 우리가 만들 수 있어요.라고 몇 번을 대답했던가. 정작 중요한 서비스 본체, 비즈니스 로직, 경쟁사보다 후진 부분을 방치하면서, 안 중요해 보이는 걸 개발하겠다는 혹은 개발하는 개빌자들 보면 속이 터진다. 우린 지금 투자금과 우리 인생 시간을 하루하루 불태우고 있다고!
- 철학이 없네 비전이 없네. 저 단기 수익에 급급한 의사결정자. 이런 얘기를 얼마나 했던가. 생존이 얼마나 중요한데! 창업까지 했을 정도면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야망이야 누구나 있지. 철학과 비전 멋있게 말로야 할 수 있지.
하지만 위클리 지표와 성장 열쇠를 찾기 위해 하루 20 시간 가까이 눈 벌겋게 찾다 보면 내 철학과 비전을 말로 표현할 시간 따위 없는 것을.
- 창업을 해보니 비용은 멤버들 월급뿐 아니라 인건비성 경비, 임대료, 숨만 쉬는데 내야 하는 세금 등 장난이 아닌 것이었다. 소프트웨어를 구매해 두고 쓰지도 않는다거나, 오버스펙으로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구매한다거나, G마켓 기업고객 쿠폰으로 할인받고 살 수 있는 물품을 턱턱 법인카드로 긁는다거나, 마케팅 소재를 한 두 개 걸어두고 온라인 광고비를 별 효과 없이 탕진한다거나, AWS redis, cloud front, new component를 비용개념 없이 붙여서 쓴다거나. 아무튼 창업하면서 짠순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가성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 마켓 쉐어란 결국 실존하는 마켓에서 매출을 내는 일이다. 물론 이단 삼단 콤보로 무료 유저나 사용자를 엄청 끌어모아서, 광고수익이나 2차 3차 부가수익을 낼 수도 있겠지만, 소비자는 점점 현명해지고 지갑을 여는 일은 쉽지 않다. 비즈니스 오리엔티드 사고는 나쁘지 않다. 좋은 비즈니스는 구매고객에게 가성비 이상의 가치를 주고, 그 가치를 자발적으로 전파시킬 수 있는 바이럴 효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 일을 위해 집요하게 타겟을 이해하고, 경쟁자를 파헤치고 그 마켓의 전쟁터에 용감하고 빠르게 들어가고 이기는 것이 해야 할 일. 이기는 건 누군가와 싸운다는 것이다. 적들이 아직 바라보지 못한 지점을 노려 잽잽을 날리다 보면 카운터 펀치가 나오는 법.
- 아주 예전에 X-boss와 출장 가서 아주 후진 호텔을 잡아줘서 짜증을 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요즘 airbnb, 3 star hotel이상을 묵어본 적이 없다. 출장 오면 출장 값을 해야 할 텐데. 계산기를 두드려 가며 하다 보니 얼마 전 테크스타즈 프로그램 마지막 달 멤버 3분을 모셔와서 빡세게 프로덕트 트리를 탔는데, 그때 우리 멤버들도 airbnb 한 유닛에서 합숙도 해주고 지하철도 잘 타 주고! 뿌듯했더랬다. 우리 회사 자금은 우리가 비전에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 돈이다. 이걸 팀원들에게 인식시키는 일 쉽지 않다.
두서없이 썼지만 지난 몇 년간 많은 X-boss 들을 떠올렸고 난 어떤 리더가 되야 하는지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다시 불러주면 언제든 달려가고 싶은 보스였건, 다시는 만나기 싫은 사람들이었건. 그 사정이, 어려움이 너무 이해가 된다는 점.
직장인들 애환도 있겠지만 경영진 애환도 있다는 점. 하아 할 일 많은데 일이 손에 안 잡혀 글로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아무튼 미안하다! X-boss 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