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이름도, 말투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무서워하는 것도 없었다.
그저 온전한 가능성 하나로
세상에 던져졌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나는 자라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는
하나하나 외부로부터 빚어졌다.
양육자, 가족, 학교 선생님, 친구들.
자라면서 그때마다 형성된
인간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지금 믿고 있는 ‘나’는 환경이 만든
편견의 조각일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감성까지 모방되는 시대에,
나의 모호함은 더욱 짙어진다.
넛지효과로 소비를 하고 내가 하는 행동도,
내가 고르는 점심도 내가 주체인 것 같지만
사실 선택하는 것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흉내 내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감성적인 글귀에 공감하며
나의 감정을 정리하고,
인기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따라 하며
정체성을 덧칠한다.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내뱉는 말,
내가 고른 취향이 정말 ‘내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감성은 더 이상 내면의 진실한 흐름이 아니라,
사회적 트렌드가 지배하는 장르가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얼마나 '진짜'인가?
나는 나라고 믿는 것들에 대해 자주 되묻는다.
이 감정은 진짜 내가 느끼는 걸까?
내가 싫어하는 것은 정말 싫어하는 걸까?
내가 지금 하는 생각들은 정말로 내가 하는생각
일까? 아니면 언젠가 어디서 보았던 것일까?
어디까지가 창조이고 어디까지가
타인의 영향인 걸까?
그렇게 검열하다 보면
‘진짜 나’는 낯설고, 희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편견 속에 자랐다 해도,
모방을 통해 자기를 구성했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나’를 찾을 수 있다.
진짜 나란, 모든 영향을 제거한
순수한 본성이 아니라,
그 모든 영향들 속에서도
여전히 나로서 느끼고 선택하고
반응하는 것일지 모른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내가 느끼는 장면이 다르고,
똑같은 책을 읽어도 나의 해석이 다르고
똑같은 음악을 들어도
내 마음이 닿는 가사가 다르다.
우리는 감정을 모방하며 자랐지만,
그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다르게’ 살려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느끼고 살아가려는 시도다.
진짜 나를 찾는 길은 거창하지 않다.
남의 기준이 아닌
내 안의 목소리로 해석하는 것.
그 작은 시도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