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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프로 불편러

by 야미

지하철을 타는 건 언제나 내게 꽤나 고통이다. 어릴 적엔 기립성 저혈압? 뭐 그런 거 때문에 갑자기 지하철 안에서 눈앞이 깜빡깜빡거리고 쓰러질 것 같은 기분에 바닥에 주저앉거나 내려서 쉬었다가 괜찮아지면 다시 타고 가던 경우가 꽤 있다. 20대에 종종 그랬는데 더 이상 복잡한 시간대에 지하철을 잘 안 타게 된 이후로는 그런 적이 없다.



그래서 난 지하철 프로 불편러가 됐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1. 온갖 냄새들

여름엔 땀 냄새, 청소되지 않은 에어컨에서 나는 악취.
특히, 향수 냄새는 내 예민한 오감을 자극해 멀미를 유발한다.

향수를 잔뜩 뿌린 사람이 내 앞이나 옆에 서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2.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들

작은 소리조차 크게 들려
에어팟을 끼고 있어도
통화 소리, 큰 목소리로 대화하는 소리,

물건 떨어지는 쿵 소리,
지하철이 움직이는 소리까지

거슬린다.


3. 비좁은 공간

추운 날엔 두꺼운 옷들로 인해 낯선 사람의 몸과

더욱 밀착되고 더욱더 내 팔을 움츠려야 한다.

그리고 큰 짐가방에 부딪히는데

기본적인 에티켓조차 지켜지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한다.


4. 이상한 행동의 '빌런들'

때로는 뉴스에서 보던 변태, 취객, 심지어 노점상인까지
지하철 안에서 만나는 것 같다.
무시를 하려 해 봐도 내 무릎에 올려놓는

무언가가 적힌 종이는 더 불편하다.


5. 새치기와 무례한 승하차

줄 새치기를 하거나, 아직 하차하지 않은 승객들이
어깨로 밀어붙여 들어오는 모습은 정말 화가 난다.
내려야 할 때도 서두르며
마이웨이로 좌석을 차지하는 사람들,

특히 특정 연령대에서 자주 보이는 무례함은 참기 어렵다.


6. 임산부 좌석 문제

원래 비워둬야 할 핑크색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나도 정말 힘들 때 앉은 적이 있는데

주변을 계속 살피게 되고 불편하다.

원래는 마땅히 항상 비워주는 게 매너지만

임산부가 있어도 끝까지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불편하다.

지하철에서 만큼은 나는 프로 불편러다.

아마 나도 누군가에겐 빌런이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요가를 통한 불편러 졸업]

그리고 요가를 시작하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최근 9호선 지하철에서의 일이었다.

9호선을 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퇴근시간의 9호선은 압사 직전 상황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급행의 경우는 더욱더.


그런데 이날 난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요가를 통해 얻은 내면에 집중하는 법과

몸의 이완 덕분에,
마치 콩나물처럼 부드럽게 흔들리며
따뜻한 온기와 내 발끝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외부 자극에 휩쓸리던 내가
조용히 스스로를 바라보고
불필요한 자극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가를 계속하다 보면

아마도 이제는 불편러에서 해방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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