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hort notice "
"알겠어. 언제까지 알려주면 돼?"
홈대디가 대답했다.
"이주... 뒤까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오페어로서 받는 주급은 많지 않아, 여행을 하려면 투잡을 뛰어야 했다. 어느 날, 한인식당에서 같이 주말알바를 하던 언니네 집에 갔는데, 그녀가 자신의 공간을 자유롭게 꾸미며 사는 모습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그녀의 취향이 가득한 예쁜 방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그때부터 내 공간에 대한 갈망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시점부터 발생했다. 집주인인 홈맘이 내가 밤늦게 들어오는 것에 눈치를 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집은 우리나라 집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였다. 영국 드라마 '셜록홈즈'에서 나오는 집을 떠올려보면 된다. 오래된 2층 집, 발을 디딜 때마다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열쇠 대신 도난 알람 시스템이 있어, 집에 아무도 없거나 밤에 잘 때는 항상 알람을 설정해야 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주말 아르바이트나 친구들과의 약속 후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홈맘이나 홈대디가 알람 설정을 위해 항상 나를 기다려야 했다. 처음에는 그런 사실을 몰랐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의를 주기 시작했다.
"늦게 오는 건 네 자유야, 하지만 밤늦게 샤워는 자제해 줘. 아이들이 자니까."
"들어올 때 미리 연락해 줘, 우리가 도난 알람 맞춰야 해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전에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제한적인 생활에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따로 방을 구해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가던 어느 날, 그들이 나를 다이닝룸으로 불렀다. 평소처럼 주간 일정 브리핑 정도라 생각했는데, 홈맘의 말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7월 초까지 방을 비우고 9월 말에 다시 돌아올 수 있어?"
"..???"
"여름 동안 나는 일을 쉬고 10월에 다시 시작할 예정이야, 그동안 아이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거든, 여름에는 가족과 친구들도 우리 집에서 머물 거야. 그래서 우린 당장 네가 필요 없고 그 방이 필요해."
계약서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세계에서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에서 급히 방을 구해야 할 상황이 온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친구 집에서 지내거나 여행을 갈 수 있는지 물었지만, 세 달 동안 여행할 돈도 없고, 여기서 알게 된 친구들도 비싼 런던 집값 때문에 모두 방을 쉐어 하는 상황이라 쉽지 않았다. 그들의 요청이 너무 갑작스러워 이기적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침착하기로 했다. 사실 나도 내 자유를 원했고, 밤늦게 들어와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일단은 알겠어. 언제까지 알려주면 돼? 내가 다시 돌아올지 아니면 아예 떠날지." 홈대디가 대답했다.
"이주... 뒤까지?"
"2주..?"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래, 어쩌면 나에게도 좋은 기회일지도 몰랐다. 오페어(베이비시터)로 워킹홀리데이 기간 전체(영국은 2년)를 보낼 생각은 없었고, 적응도 하고 영어도 많이 늘었으니 내 공간을 찾아 새로운 경험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최소한 새 일을 구하고 방을 찾을 시간을 한 달 정도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답답했다.
결국, 한 달 뒤인 6월 말까지 답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난 급히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다행히 페이스북 커뮤니티를 통해서 이사 갈 집도 꽤 빨리 구했고 여행 가려고 주말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이 조금은 있어 당장 급한 보증금은 낼 수 있었다. (이전에 모아온돈은 이스터 홀리데이 때 한 달간 쉬면서 여행하느라 진작에 다 썼다. 이런 일을 미리 말해줬다면 난 그 돈을 여행에 쓰지 않고 새 살 곳을 구하는데 썼을 것이다.) 보증금을 내고 나니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던 나는 결국 면접에 붙은 호텔에서 근무하는 것을 포기하고 일하던 한인식당에서 더 많은 시간을 일하기로 했다. (한인식당이 시급이 더 많았다.)
이스트 런던에 위치한 집에서 영국인 2명, 이탈리안 2명 그리고 나 총 5명이 하우스쉐어를 했다. 전세 개념은 없고 월세인데 난 매주마다 방세를 냈고 한 달 4주 동안에 내는 비용은 약 140만 원 정도, 우리나라와 달리 보증금은 한 달 치의 두 배를 내면 됐었다. 이 마저도 코로나 때 급하게 귀국하느라 돌려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