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노브라입니다.

속박에서 벗어난 어느 우연한 하루의 기록

by Anne H


누구에게나 처음의 역사가 있다.


잘 때 브라 하고 자요?


만난 지 2달 된 남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제 막 나온 따끈한 에스프레소를 앞에 두고 내게 물었다. 잘못 들었나? 분명히 변태는 아닌 것 같았는데. 고요한 정적 사이로, 캐럴 메들리가 흐른다. 여기저기 의자 끄는 소리,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김이 서린 창에 반사되어 공간에 울린다.


이놈이 미친놈은 아닌가, 별의별 의심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힘껏 눈을 치켜뜨고 궁금한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따져 물었다. 최대한 내가 낼 수 있는 단호하고 앙칼진 목소리로.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어이가 없다. 오기 전에 어떤 기사를 봤는데, 여자들이 속옷을 입고 자면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몸에 안 좋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네가 잘 때 편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자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다. 아니, 기사를 보면 본거지, 그걸 왜 2달 만난 여자친구한테 물어보는 것인가? 이놈은 생각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대뜸 화가 나서, 그걸 2달 만난 여자한테 물어보고 싶었냐고 오히려 따져 물었다. 그랬더니 억울하다는 모습으로 돌아오는 그의 대답


그게 뭐 별일인가요?




내게는 지난 15년간 별일이었다. 여자의 모습을 하기 시작한 뒤부터 엄마가 내게 알려준 건 어떤 속옷을 사야 하고, 어떻게 입는 지였다. 생각해 보면 왜 입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나 또한 질문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 주변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비슷하게 생긴 속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그 얇디얇은 가림막을 벗으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거나, 내가 마치 암묵적인 규칙을 깬 것처럼 보일까 봐 겁이 났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당시 집에서도 속옷을 입는 편이었다. 아빠도 있고 남동생도 있는데, 왠지 노브라 차림의 잠옷은 창피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뭔가 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2010년 그 겨울, 지금의 남편인 ‘나의 노브라 역사 창시자’의 질문을 받고 나서 나는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내게 그런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남자’와, 그런 질문에 마땅한 이유 없이 화가 나는 ‘여자’ 그리고 한 번도 그런 질문(왜 입는지)을 해본 적이 없는 ‘나’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특히 당시는 지금처럼 ‘노브라’에 대한 대중적 인식도 없었던 때라, 지금도 남편과 그 이야기를 할 때면 오빠는 정말 앞서가는 남성이었다며, 대단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워주곤 한다. 황당한 질문을 받은 당일, 나는 처음으로 브라를 하지 않고 집안을 활보했다. 무엇이든 경험해보지 않고 단정 짓기 싫어하는 나의 급한 성격 덕에, 그날 이유도 모르고 입었던 속옷을 집어던져 보기 시작한 것이다.


첫 경험은 정말 짜릿했다. 그간 내가 그 옷을 왜 입었는지 모를 정도로 몸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상체를 움직일 때마다 조여 오는 것도 거슬리는 것도 없었고, 여름에 땀이 찰 일도 없을 것 같았다. 편안한 매력을 한번 맛보니, 그 안락함을 포기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특히 더운 여름에는 더더욱, 밖에 나가기가 싫어질 정도로 속옷 입는 게 귀찮아지는 날들이 늘어났다. 브라의 속박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노브라 중독자의 삶이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대관절 속옷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리도 메여 살았단 말인가. 기원전부터 사람들은 가슴을 가렸다. 2,500년 전의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류층 여성만이 속옷을 입을 수 있었고, 로마시대 때만 하더라도 유럽 전역에 누드 문화가 유행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내가 그간 속옷의 목적과 기능에 대해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속옷을 신체 보호의 목적보다, 창피한 것을 가리는 용도 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 생각이 맞는지 확인해 볼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무지함이 지난 9년 그 작은 끈 가리개에 내 자유의 일부를 가둬둔 것이다.




지난주 화요일, 아침도 먹지 못하고 허둥지둥 회사에 출근했는데, 이상하게 근무시간 내내 몸이 편안했다. 평소와는 다른 안정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가벼움이라고 해야 하나? 설마.. 생각 없이 몸을 만져보던 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내고, 내 상체를 재빠르게 쓸어내려 보았다..


오 마이 갓.. 오늘 나 노브라로 왔네?


그래도 밖에 사람들 만나거나, 회사에 나갈 때는 아주 편한 스포츠 브라를 예의상(?) 꼭 하곤 하는데, 집에서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맨몸에 옷만 걸쳐 입고 나온 것이다. 다행히 내 가슴이 작기도 했지만, 그날 얇은 나시를 받쳐서 블라우스를 입었던 터라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이 웃긴 상황을 회사에 있는 나의 절친 우여사에게 사내 메신저로 전달했다.


나 오늘 노브라임 ㅋㅋㅋㅋ


1초도 걸리지 않고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


대박 ㅋㅋ


그렇다, 나는 그날, 회사에서 지낸 약 8시간의 근무시간 동안 노브라로 사무실과 복도를 활보했다. 집이 아닌, 잘 모르는 타인과 함께 지내는 공간을 노브라로 오가니 신체의 자유에서 나아가, 이 사회에서 자유의 여성으로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누구도 아직 감히 넘어보지 못한 금단의 땅을 용기 있게 들어와 개척한 사람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에 견줄 만 큼 위대한 탐험이었다.




언젠가, 아직 끝을 쓰지 않은 이 탐험을 더 넓은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배짱과 용기가 나에게 생기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지난 30년 남짓의 세월 동안, 의심하지 않고 입고, 마시고, 보았던 '당연한' 것들에 대해 의심의 출사표를 던져보고 싶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자유의 샘이 어디론가 줄줄 새고 있는 건 아닌지, 아직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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