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은 몇 kg 인가요?

하루의 무게

by Anne H


나의 세상은 숫자를 기반으로 돌아간다.


그건 내가 유난히 숫자나 수학을 좋아한다든지, 아니면 ‘매사가 산수를 하듯 명확하고 딱 떨어져야 해서’와 같은 이유는 절대 아니다. 차라리 그런 이유라면 좋겠지만 말이다.


내 삶의 중심에 있는 숫자는 바로 주로 네모나거나 동그랗게 생긴 기계 위에 뜨는 숫자다. 일단 이 숫자를 맞이하려면 거쳐야 하는 복잡한 순서가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화장실에 간다. 절대로 이 차가운 기계 위에 올라가기 전에 그 무엇도 섭취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나선 조용히 잠옷을 벗어던진다. 마음 같아선 속옷도 벗고 싶지만, 언제 깨어나 이 모습을 관찰할지도 모르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 최소한의 가림 옷은 입기로 한다. 이제 심호흡을 하고 조용히 발을 올려 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숫자를 기다린다. 하나, 둘, 셋!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숫자 3까지만 세어도 숫자가 뜬다.


‘55.3’


선포되었다. 분명히 어제와 같은 시각보다 명확히 0.8이 늘어났다. 머릿속으로 어제 있었던 하루 일과를 떠올려 본다. 아침부터 내가 했던 행동들, 만났던 사람, 먹었던 음식을 비롯해 충분히 잠을 잤는지 등에 대해서.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그리고 조용히 계기판에서 내려와 샤워를 하면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숫자를 중심으로 하루 일과를 짠다. 지하철역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탈 것인지, 자전거를 탈 것인지,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을지 아니면 집에서 간단한 샐러드를 싸갈지, 돌아올 때 맥주를 포기해야 할지 말지, 집에 올라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탈 것인지 말 것인지 아 그리고 좀 더 명상을 할지 말지, 일찍 잘 것인지 말 것인지 등에 대해. 주변에서 혀를 내두르며, 이제 제발 그만 좀 신경 쓰라고 하는 바로 이것, 이것은 나의 긍정 인생에 몇 없는 콤플렉스 ‘몸무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콤플렉스의 역사는 꽤 많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2008년 8월 어느 무더운 여름, 대학에서 첫 남자친구를 만났을 때 즈음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몸무게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학입학 전까지는 그 누구도 나의 몸무게를 문제 삼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정해진 교복을 입고 성적만 잘 나온다면, 만사형통! 자신감이 뿜뿜 넘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더운 여름날 신촌의 독수리 다방 건너편 어느 골목길에 있는 찜닭 집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그리고 먹는 것에 관심이 그다지 없는 한 마른 남자를 만나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몸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에서의 첫 연애는 즐거웠지만 동시에 매우 힘들었다. 성향이 다르긴 했지만, 캠퍼스 커플이라는 이유로 수업도 같이 듣고 학식도 먹으며 나름 공통의 이야기를 잘 만들었고, 계절별로 시시각각 변하는 교정을 걷고 학교 축제를 참가하며 추억을 쌓았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정말 빠지지 않고 크고 작은 다툼을 했다. 주로 그 다툼은 내가 느끼는 서운함에 기인한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100일째 되는 날 어느 카페에서 만났는데, 100일 선물로 바로 그 밑에 층에 있는 문구점에서 가격표가 붙은 3,000천 원짜리 필통을 사 왔다든지, 군대 간 동안 매일매일 편지를 써가며 기다렸건만, 나를 휴가 때 우선순위 밖으로 밀어놓는다든지 하는 일들. 그런 일들을 여러 번 겪으며 나는 종종 남자친구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이유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살’이었다.


날씬하지 않아서 예쁘지 않고, 예쁘지 않기 때문에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1차원적인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그땐 그 이유에 꽂혀 깊은 좌절을 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몸을 바라보게 되었다. 두꺼운 팔뚝이나, 얇지 않은 허리가 보기 싫었고, 남들 앞에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나가는 게 싫어졌다. 왜 나를 이렇게 살이 찌도록 그대로 놔둔 건지, 집에 있는 엄마가 원망스럽기까지 했었다. 그 이후로 몇 번의 다툼 끝에 결국 이별을 택했던 나는, 이 모든 이별과 식어버린 애정에 대한 원인을 살에서 찾기 시작했다.


밥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점심은 정말 칼로리가 낮은 빵이나 카푸치노로 대신하고, 저녁은 밥 대신 두부를 먹었다. 시간표는 일부러 많이 걷도록 멀리 떨어진 건물들을 연강으로 이어지게 짰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나는 내 삶에서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특히 백화점에 가면 듣는 이야기가 새로웠다. ‘뭘 입어도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요~ 정말 너무 날씬하세요!’ 옷 가게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아는 친구들과 가족들마저도 이게 네가 정말 맞냐며 놀라워했고, 어떤 사람은 혹시 성형을 했냐고 묻기까지 했다. 사진을 찍으면 나조차도 놀랄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 즈음부터 꽤 많은 남자 선배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인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나란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 단순히 살이 빠졌다고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 이후로, 나는 지나치게 몸무게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에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0.5kg의 차이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점점 더 낮은 숫자를 원하게 된 나는, 남들이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배려있게 하는 말에도 괜히 신경질이 났다. 몸무게가 조금이라도 더 나가는 날에는 누군가 음식을 권하는 것조차 짜증 나게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몸무게가 평소보다 좀 빠져있는 날에는 괜히 기분이 업 되어 평소에 하지 않던 농담과 행동을 했다. 특히 음식조절에만 유난히 신경 쓰면서 음식 강박증도 심해졌다. 어떤 음식을 먹든 당류, 칼로리 등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남들과 음식을 함께 먹는 날이면 내가 먹을 음식을 따로 싸가는 등, 다른 사람들을 다소 불편하게 하면서 까지 몸무게에 집착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인들과의 만남이 줄어들고 밖에 나가는 일도 귀찮아지면서 은둔형 삶으로 생활이 바뀌고 있었다. 몸무게가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무게와의 전쟁에서 전세가 바뀐 건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나서였다. 남편을 만난 건 내가 인생 최저 몸무게를 갱신했을 즈음이었는데, 그때 만난 남편은 지나치게 살과 몸무게에 집착하는 나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안아주었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살’ 즉 외형과는 관계없이 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사람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내가 갖고 있는 생각, 말투,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에서 나의 살은 덧셈과 뺄셈을 반복했지만, 그가 주는 사랑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 날들이 쌓이면서, 나는 내가 그동안 살에 집착했던 이유를 문득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작은 숫자에, 그리고 매일같이 변하는 나의 신체에 나는 이렇게 민감할 것일까?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기준이 ‘외모’라고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지난 이별에 대한 1차원적인 원인 분석도 문제의 시발이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나의 다른 좋은 장점들을 알아차려 주지 않았기에 남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을 ‘살’ 로만 한정했던 건 아닌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후로 살에 대한 나의 콤플렉스는 점점 옅어지고 있다. 앞뒤로 조금씩 움직이는 숫자에도 덜 민감하게 되었고, 사람들을 만나서 먹고 마시는 일에도 조금 더 관대해졌다. 숫자에 집착하기보다, 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벽을 완전히 넘지는 못했다. 살을 빼면서 내가 경험했던 세상이 그렇지 않았던 때 보다 달콤했기에, 더 예쁜 옷을 입을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덜 망설이게 되는 자유의 경험 같은 것 때문이랄까.




요즈음 나는 이 ‘숫자’를 다른 척도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몸의 무게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균형 잡힌 하루를 살고 있는지에 대한 척도로. 단순히 살의 변화로 보고 먹는 음식, 식단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 변화에 따라 어제 내가 산 하루는 어떤 하루였는지, 그리고 오늘은 어떤 방식으로 사는 것이 좋을지를 판단하는 긍정적인 수단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몸무게에 따라 어제 나의 생활습관을 재단하고, 내가 운동량이 부족하진 않았는지 너무 기름진 음식을 먹은 건 아닌지, 평소에 받지 않던 스트레스를 받았다거나, 숙면하지 못한 건 아닌지 판단한 다음, 양복점의 맞춤옷을 재단하는 재단사처럼 나의 하루를 빈틈없이 설계한다. 오늘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운동을 하고 어떤 충만한 시간들을 보낼지에 대해서. 인생의 중심이 외면의 '살'에서 내면의 '살'로 옮겨가는 중이다. 아직 무게가 널뛰는 날이면, 쿵쾅거리는 심장과 신경을 부여잡아야 할 때도 있긴 하지만, 조금씩 ‘몸무게’ 콤플렉스에서 탈출하고 있는 중이다. 언제 이 탈출을 온전히 성공할지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요즘은 꽤나 이 콤플렉스 덕에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으니 꼭 탈출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왕왕 들기는 한다.


앗! 이런.. 이 고백을 하다 보니, 어쩌면 이 콤플렉스는 앞으로 내 인생을 쭉 같이 할 불길한 예감이 든다.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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