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그러나 깊은 아우성
글은 시간을 고스란히 담는다. 그리고는 담은 시간들을 볕 좋은 날 종이에 말려 어디도 가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아둔다. 이것은 소리로 나와 어느새 흔적 없이 흩어져 버리는 ‘말’이 앞으로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글만의 속성일 것이다. 나는 그런 글을 통해 지나온 사람들의 시간을 본다. 그리고 그 시간을 들춰 누군가의 슬픔과 기쁨, 좌절과 희망을 함께하며 살아간다.
세상에 시간을 나누는 것만큼, 고귀한 나눔이 또 있을까. 그런 나눔에 언제나 나는 방관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지난날, 누군가 내게 초록의 생명을 건넸다.
식물을 좋아하냐는 친구의 질문에, 마루에 놓인 몬스테라를 바라보다 멋쩍어 고개를 들었다. 복잡한 게 싫다고 소파도 티브이도 들여놓지 않은 친구의 대궐 같은 마루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초록의 몬스테라. 다른 집들은 식물을 인테리어로 들인다는데, 여기서는 몬스테라가 압도적 주인공이다. 원목 마룻바닥 위에 놓인 것이라곤 이케아에서 조립해 온 키가 크고 폭이 넓은 책장과, 그 옆을 우두커니 지키는 하얗고 둥근 화분. 입이 어찌나 큰지, 이런 식물을 집에서도 키울 수 있구나, 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게 뻗어 여러 줄기로 자라난 몬스테라는, 이 집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나 있는 듯, 사방으로 퍼져 나른한 오후에 당당히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이미 충분히 키가 큰 몬스테라가 어디까지 자랄 수 있는지 궁금해진 나는, 몬스테라가 여기서 더 자랄 가능성도 있는지 물었다. 더 커진다면, 적어도 마루의 1/8은 몬스테라 잎들이 차지할 것이 분명했다. 큰 키에 옅은 녹색 원피스를 걸친 친구는 마루를 성큼성큼 걸어 몬스테라 옆으로 다가왔다.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생생한 초록 잎들과 마주한 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몬스테라가 친구의 몸을 빌려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친구는 몬스테라의 성장이 언제 멈출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은 그저 이 신비한 생명이 뻗어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 대답했다. 공중으로 사정없이 뻗은 잎들을 바라보는 친구의 모습이 밤하늘의 달 속 토끼를 찾아보는 아이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친구는 목소리를 몇 번 가다듬더니, 큰 결심을 한 듯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몬스테라를 키워볼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식물에 대한 지식이라곤 1도 없는 내게 식물이라니. 섣불리 내 공간에 들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키울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의 눈썹 양 끝이 무게 추를 단 마냥 밑으로 쑥 내려갔다. 그러나 이내 큰 상관없다는 듯 부엌에서 식물용 가위를 들고 비장한 모습으로 나타나더니, 내게 어떤 잎이 마음에 드는지 대뜸 물었다.
친구는 들뜬 목소리로 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무엇보다 마음을 준 것이 이 몬스테라라고 말하곤 잎들을 정성스레 닦았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일조량을 고려해 화분의 위치를 옮기고, 물을 주며 조심스레 어루만졌던 순간들이 친구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듯했다. 다소 비장한 모습의 친구에게, 나는 잎을 가져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화병에 꽂아둔다 한들 며칠 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친구는 잠시 생각을 멈추는 듯하더니, 이내 큰 입술사이로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몬스테라를 기꺼이 내게 분양해 주겠다고 커다란 입의 줄기를 싹둑 잘라 내게 건넸다.
그날 저녁, 나는 몬스테라 잎과 함께 집에 왔다. 부엌 천장에 용도 없이 뒹굴고 있던 큼지막한 유리병에 인터넷에서 찾아본 그대로 물을 2/3 정도 담고 가져온 몬스테라를 꽂았다. 이렇게만 해도 정말 자라는 걸까? 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 일단 부엌 위에 올려놓았는데, 초록이 하나도 없던 집이 이 작고 싱그러운 생명력으로도 조금 상쾌하고 환해진 느낌이 든다. '우리 집에 오니 어때?' 말도 못 하는 식물에게 괜히 말을 걸어본다. 어디선가 친구의 집에서 맡았던 옅은 바닐라 향이 나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옮겨진 자리에서 조금씩 뿌리 내리는 몬스테라를 보며, 줄기를 잘라 건네던 친구를 자주 떠올렸다. 그리고 날이 지날수록 이 식물에 대한 새로운 감정과 생각이 생겨났다. 몬스테라가 궁금해졌고,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식물을 잘 키울 수 있겠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무슨 자식 입양 보내는 마음이라며 호탕한 웃음소리로 시원하게 몬스테라를 건네주던 친구의 모습. 어느 정도 몬스테라와 함께 일상을 보내고 나니, 그날 친구가 내게 잘라 주고 싶었던 것은 몬스테라 잎이 아니라 식물이 주는 평안함과 충만함 그리고 식물의 성장을 바라보는 기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잎 하나를 키우기 위해 들어갔던 친구의 일상과 마음 또한 내게 나누어주었다는 것도.
언젠가, 글쟁이가 되고 싶다던 내게 정말 글을 쓰고 싶은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글을 쓰는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어떤 목적인지…. 망망대해에 그냥 띄워진 배처럼 나아갈 뿐이지, 노를 젓는 이유도, 목적지도 몰랐다. 그저 바다가 좋아서, 그냥 노를 젓는 게 좋아서 배를 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집에서 자라나는 몬스테라를 보며, 그제야 내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의 삶의 일부를 잘라 사람들에게 분양하고 싶다. 그들의 삶에 작은 씨앗이 되어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언제가 그들이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받았던 것처럼, 나를 필요로 할 때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얼굴을 내밀고 싶다. 우연히 분양된 나의 삶이 언젠가 그들의 삶과 뒤엉켜 새로운 색과 향을 가진 잎들로 건강히 자란다면,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이더라도 나는 아마 부단히 행복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옛날부터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그래왔듯, 내 삶의 단편들을 글에 담으려 한다.
그리고 언젠가 볕 좋은 날 이 시간들을 말끔히 말려 유영하는 시간에 띄워 보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