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색깔
우리는 늘 다른 이의 입술에서 '나'를 찾는다
평가가 신앙이 된 사회에서, 나는 꽤 오랜 시간 방황했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누군가의 '평판'을 법전처럼 받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매일 같이 회사에 나가 누군가의 저울 위에 섰다. 하루는 옆에 있는 대리님, 어떤 날은 옆팀 팀장님.
그 저울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내 무게를 달리 측정했다. 그리곤 내 뒤에 딱지를 붙였다. '너무 가벼움', '무거움', '잘 모르겠음'. 누군가에 의해 측정된 나의 모습은 낯설지만 신기했다. 마치 또 다른 자아를 마주 보는 느낌이었다.
사회는 마치 종교단체 같았다.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동료, 상사, 후배. 위로,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한 경쟁.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평가가 또 다른 '내'가 되는 걸 당연시했던 사람. 누군가의 인정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쏟았던 지난날.
다른 이의 입에 오르내리는 나를 걱정하던 어느 뜨거운 여름,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던 나의 동료. 그녀의 손을 덥석 잡은 그날, 나의 해방이 시작되었다.
B는 언제나 차분했다. 그건 그녀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였다. 느린 템포로 가지런히 정리된 목소리. 오선지 위에 흔들림 없는 높낮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있자면 달큰한 바닐라 향이 났다.
그녀는 어렵지 않게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 단정한 일처리, 기복이 없는 태도. 언제부턴가 만나는 사람들 마다 B이야기를 했다. B가 어떤 사람인지, 함께 일할 때 어떤 기분인지.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B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맨밥을 삼키듯 침을 모아 넘겼다. 같이 내려가라. 그냥 자연스럽게 빠져라.
그러던 어느 가을, 내 귀가 탕비실에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S 팀장님의 목소리. 그 옆으로 익숙한 템포, B의 웃음소리가 흘렀다. 비슷했다. 사람의 결이 같다는 건 이런 말일까. 결이 같은 나무는, 같은 바람소리를 내는구나.
이후 B를 볼 때마다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부럽지만 짜증 나고, 좋지만 미워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말하는 화법, 진중한 목소리를 내는 발성법. B가 메일을 쓰는 방식도 유심히 봤다. 무엇이 다른 걸까.
다른 걸 찾을수록, 나는 틀린 사람이 되었다. 그녀와 비슷해질수록 스스로가 낯설었다. 매사에 방방거리며 웃음소리가 컸던 나. 아끼던 후배는 내가 생기가 없어지고 어두워 진 것 같다고 했다.
과거의 내가 맞았던 걸까? 지금이 틀린 걸까?
목적을 잃은 질투가 방황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사랑, 인정을 받기 위해 시작한 노력. 그런데 나는 왜 이토록 괴로울까. 사람들은 왜 나를 보지 않을까.
예민해진 마음에 오해가 자랐다. 사람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에 따라 모양이 바뀌었다. 어느 날은 둥글게. 또 어떤 날은 한없이 작아졌다. 내가 조각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B도, 나도 아니었다.
방황에 지쳐 주저앉은 나에게, B가 다가왔다. 안색이 많이 어두운 B는 커피를 타며 내게 말했다. 그녀의 지인이 본인이 꿈꾸었던 회사에 이직을 했다고. 항상 밝고 적극적이어서 본인과는 달랐다는 그 친구. 그 이직소식을 듣고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고.
"나도 몇 번 면접을 봤었거든.. 뭐가 문제일까? 면접관들한테 인상이 별로인 걸까?"
완벽해 보이던 그녀도 나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묘하게 안도했다. 그건 아주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내가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의 질투. 또 다른 인정을 갈구하는 너의 모습.
타인의 완벽한 인정이란, 세상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나는 평가를 담보 삼아 나를 옭아매던 종교에서 벗어났다. 여전히 타인의 인정을 원하지만 습관적인 불안은 버렸다. 누군가의 저울에 이유 없이 올라가길 거부하기 시작했다.
대신 내가 인정받고 싶은 사람을 신중하게 고르기로 했다. 평가를 쉽게 하지 않는 사람. 나를 진심으로 볼 수 있는 사람. 마음이 단단하고 올곧은 사람.
해방된 이 사회에서 나는 예전보다 설렌다. 질투로 찾게된 이 자유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가끔은 궁금하다.
당신에게 키워질 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