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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Jay Jul 28. 2022

직장인의 비애 2

학기가 시작된 첫 주.... 오피스에  도착해보니 조그마한 메모가 붙어있다. 센터장의 소환 요청이다  가방을 내려놓고 잠깐 매니저와의  관련 얘기를 끝내고 방으로 찾아갔다. 좋은 일로 불려 가진 않을 거라는 느낌은 있었으나 역시...


내가 불려 간 이유는 8시에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오피스를 돌며 누가 출근했는지 눈도장을 찍는 건 알고 있었지만 18분 늦게 도착해서 불려 갈 거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잠깐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무늬만 뉴질랜드, 직장생활이 그렇게  빡빡하다는 한국에 아직도 살고 있나?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몇 년간 근무환경이 많이 좋아져서 유연근무가 가능해졌고 그 때문에 나는 딸아이 픽업을 핑계로  8시에서 3시에만 학교에 있고 나머지 한 시간은 집에서 일한다.   문제는 나 스스로 이 시간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머지 오늘같이 한 10-20 분 늦게 출근하는 걸 가볍게 여겼다. 아침에 남편과 딸아이 도시락까지 챙기고 출근을 하다 보면, 교통 체증에 걸리기는 다반사.... 두 개의 실수를 했다.  이번 학기 유연 근무를 신청하며 8.30분으로 폼을 변경했어야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변경하지 않았던 점, 어차피 난 집에서 한 시간이 아니라 거의 두 시간 이상 어떨 때는 서너 시간을 수업 준비와 다른 행정 일을 하는데 쓰기 때문에 아침에 한 이 십분 이십 분 늦게 나와도 그 시간을 이미 전날 다 채웠다는 보상심리가 깔려 있었는지....  어차피 집에서 더 많이 일하니 아침에 그 정도 늦고 그 시간을 오후에 보충하는 건 문제가 아니라는 아주 느슨한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다...... 프로 답지 못했다.  직장 생활을 잘하려면 이런 꼬투리를 잡히지 않게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몇 년간 살짝 망각하고 살았다.  코비드 시국을 거치며 학교 전체기 재택근무에 유연 근무를 권장했었는데 모든 것이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듯하다... 내가 소속된 센터가 어떻게 빡빡하게 직원들을 관리해 왔었는지 요 삼 년간 잠깐 망각하고 살았다.   

다시 마음을 다 잡아 본다.... 그래... 난 직장인인데... 조심해야지...


그래도 화나는 건 내 입장에서는 이런 하잘 거 없는 거로 꼬투리를 잡혀, 본보기로 불려 갔었다는 거다. 나름 시간 개념 정확하고 내 할 일은 정확하게 해내는 스타일이라 자부해 왔는데.... 지각으로 지적을 받다니.... 십이 년을 이곳에서 일하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도 할 말은 많다. 이번 주부터 매주 목요일은 미팅을 4시까지 잡아놓고 그건 당연하게 생각하고, 3시에 끝내겠다고 서로 합의한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 이 분위기.... 이건 정당하지 못하다. 그래 놓고 서류에 작성된 시간을 빌미로 혼쭐을 내다니....


어차피 반항해 봤자 못 이길 싸움이기에, 어쨌든 빌미 제공은 내가 했으니.... 시간보다 늦게 출근 한 건 맞으니까..... 그래서 일단 늦어서 미안하다 사과를 하고, 출근  시간을 8.30으로  바꾸겠다 말했다.  하지만  목요일은 4시에 미팅이 끝나니 새로운 폼에 바뀐 시간을 써서 시간 계산해서 다시 제출하겠다고 했다.  미팅 얘기를 듣고는 살짝 물러서며,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그냥 이메일로 매니저에게 알려주란다.

 객관적으로 우리 센터 장은 보수적이다... 우리말로 라테는 말이야 하며 지난날 자신이 애들 넷 키우며 어떻게 커리어를 키웠는지, 부당한 일들을 얼마나 겪었는지 간혹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연근무에 대해 별로 마땅치 않아하고 시간이 될 때면 모든 스태프들과 눈도장을 찍어야 만족해하는 듯하다. 시집살이 심하게 한 시어머니가 더 시집살이시킨다는 옛말이 있듯이.... 그래도 난 센터장에게 보수적이라는 거, 바늘로 찔러도 들어갈 거 같지 않은 차가움 외에는 별 감정은 없다. 워낙 일을 잘하고 정확하니까..... 그래도  사람에게 안 좋은 감정이 쌓이는 건 어쩔 수없다..... 추진력 있고 설득력 있고... 센터장으로서의 신뢰가 있었는데 이런 사소한 일로... 갑자기...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모르는 정치적인 음모가 있다. 대충 가늠은 되지만 사실 파악이 안 됐으니 그저 내 추론이다.


이럴 때 갑갑하다. 말로 싸워서 이기거나 설득할 재량도 못되고 그렇게 내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쏟아붓지 않겠다는 굳건한 다짐을 했건만, 그래도 이번에는 억울한 마음에  한번 들이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오기가 치솟는다.  다행히 이번에도 오케이 오케이 알았다.... 잘하고 나왔다.  속은 부글부글하지만 쿨하게 인정하자. 내가 늦은 거니까.... 나는 직장인이니까..... 그래도 바라본다. 내 딸들은 다음 세대들은 직원들을 믿유연근무, 재택근무를 권장하며 이런 제도가 잘 정착되어  가정을 꾸리며 일도 잘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 가 마련되어 있는,  그게 당연한 세상에서 살기를.... 내 딸들은 나보다 사회 대처 능력이 뛰어나서 내가 겪는 이런 시시콜콜한 일들을 겪지 않기를 또는 나보다 잘 헤쳐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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