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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긴어게인 Dec 21. 2020

노년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
'밤에 우리의 영혼은'

누구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갖고 있고, 또 지독히도 외롭기만 하


밤에 우리의 영혼은(Our Souls at night) 

밤에 우리의 영혼은(Our Souls at night)


당신에게는 어떤 얘기도 들어줄 누군가가 있는가? 그렇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외롭다고 합니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몰라도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쁜 우리들은 미처, 몇십 년 후의 나의 모습이 어떠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사실 생각하기도 싫어서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연히, 넷플릭스의 메인 화면에, 내가 좋아했던 로버트 레드포드의 포스터가 등장해서 '클릭'하게 되었는데, 노년의 삶을 생각하게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어쩜 이리도 '담담'할 수가 있는지!! 오랜만에 여운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원래, 2016년에 출판된 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의 영혼은'이라는 책이 원작인데, 저자가 2014년 71세에 타계하기 전 탈고한 소설로 그의 유작이기도 하다네요...


외로움이라는 것

고단하지는 않지만 '외로움'과 '별다를 게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일흔 살의 그와 그녀...

영화는,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작은 마을의 거리에서 시작됩니다. 가게들은 '영업 종료'를 내걸고, 간판의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죠. 그리고 이 곳에 배우자와 사별하고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익숙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와 그녀가 있습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이들은 서로 '이웃'입니다. 아무도 그와 그녀의 마음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마치 덩그러니 세상에 혼자 있는 것만 같죠. 어느 날 저녁, 그녀가 불쑥 그를 찾아와 얘기합니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와 줄 수 있어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거 말이에요. 밤이 외롭잖아요"라고.


시작이라는 것


그는, 조명이 밝지 않은 테이블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그런 그의 뒷모습은 외롭기만 합니다. 신문을 보고,  TV를 보다가 홀로 잠을 자고 그렇게 하루가 오늘, 또 오늘이 되어갑니다. 때로는 커피숍에서 종종 만나는 친구들이 있지만, 그렇게 즐겁지 않습니다. 하루 온종일 대화 없이 지내기도 하고, 마음 둘 곳도  없고, 그저 외롭기만 한 하루하루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매일 저녁에 간단한 짐을 챙깁니다. 칫솔, 신발, 잠옷... 그리고 그 짐을 들고 그녀의 집으로 향합니다. 


선택의 이유


서로를 잘 모르지만, 한 침대에서 대화를 하면서 같이 잠을 잔다는 것. 그것을 제안한 그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그런 제안을 받아들인 그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그냥... 지독한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가 필요해서? 아니면 '혼자'라는 두려움 때문에? 어쨌든... 선택을 했다면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는'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의 선택으로, 그녀의 집에서 그와 그녀는 매일 밤 '친구'로 지냅니다. 그녀는 그에게, 새로운 친구인 그를 위해 그동안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집안 곳곳을 소개해줍니다. 그리고 그 둘은 아직은 어색하지만, 한 침대에 나란히 눕습니다. 그렇게 '이웃사촌'이었던 그 둘은 외로운 밤을 함께 보낼 '대화 친구'로 익숙해져 갑니다. 아침이면 그녀의 집에서 나와, 손에는 작은 침구류를 들고서 걷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저녁이 되면 다시 그녀의 집으로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그와 그녀


그는, 그녀의 집을 찾을 때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갑니다. 그녀가 묻습니다 "왜 뒷문으로 와요?"라고. 그는 "좀 그렇잖아요.... 사람들이 수군거릴 테니까" 그리고, 그는 물건을 두고 다녀도 되지만, 매일 들고 다닙니다. 그러면 덜 뻔뻔스러울 것 같아서 말이죠. 그는 이웃의 시선이 부담되나 봅니다. 그가 그녀에게 얘기합니다. "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면서 살았다"라고 말이죠. 그러자 그녀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없으니 앞으로 정문으로 들어오라'라고 합니다. 다음날 그는 정문으로 다니기 시작했고, 그들만의 일상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랜만에 친구들이 종종 모이는 커피숍에 들렀다가 친구들이 그와 그녀의 얘기를 하는 것에 화가 나서 그냥 나와 버립니다. 그녀가 묻습니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나요?"라고... 그는 "누군가 안 좋게 생각하는 거 싫잖아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녀는 위로합니다. "잊어버려요. 상관없는 일이잖아요"라고... 이제 그와 그녀는 서로에게 편안한 친구가 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상처를 얘기한다는 것


그리고, 한걸음 더, 이제 그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인생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꺼내놓습니다. 그는, 아내와 어린 딸이 있었지만, 잠시 외도를 했었습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가정으로 돌아갔지만 이미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내와 딸 그리고 이웃에게는 가정을 파탄 낸 사람으로 그렇게 평생 잊을 수도 용서받을 수도 없는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한 남자였습니다. 그녀는, 잠깐 사이에 어린 딸을 사고로 잃었습니다. 그 뒤 부부 사이가 하루아침에 달려졌습니다. 완벽한 삶이 하루아침에,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뀌어버린 거죠. 또, 누나를 잃은 남동생의 상처도 그때부터 곪아가기 시작했던 거죠... 그녀는 자식을 잃은 상처에 아들의 상처를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인생은 흘렀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친구가 된 그와 그녀에게 서로의 마음을 얘기합니다.


마음먹기에 달라지는 것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를 안고 있던 그와 그녀는 서로의 일상에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시내에 나가서 점심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면서 말이죠.


어느 날 그녀에게 아들과 손자가 찾아옵니다. 아들 부부에게 문제가 생겨 당분간 손자를 맡아달라고 합니다. 그녀의 손자도 그와 그녀의 소중한 일상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어느 순간 손자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기차놀이도 하고, 식사도 하고, 과거 얘기도 하고, 그리고 셋이서 같이 잠을 잡니다. 한 가족처럼 말이죠.


곤충을 잡으려고 애쓰는 손자 제이미를 보며 그가 얘기합니다. 
"어렸을 때는 쫒아가서 무언가를 잡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었어요."

그녀가 맞장구를 칩니다.  "맞아요. 늘 뭘 쫓아다닐까 궁리만 했죠"라고. 그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마치, 제이미가 우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10대에는 대학을 20대에는 안정된 직장을 30대에는 승진과 커리어를 그리고 40대, 50대는 치열한 직장에서의 버팀을 그렇게 쫓아만 가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무언인가를 잡으려고만 쫓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외로워 보인다고 말하려는 게 아닌지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쉽게 아니면 또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함께 한다는 것


갑자기 그녀의 이웃 친구가 먼 곳으로 갔습니다. 친구를 애도하고 돌아오는 길에 슬픔이 가득합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누군가가 친구가 되고 누군가는 떠나면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왔듯이 말입니다. 다행인 건, 이러한 슬픈 순간을 함께하는 그와 손자가 있습니다. 혼자가 아닌...


그와 그녀는, 손자와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냅니다. 손자는 어느새 늘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놓아두고 그와 그녀와 지낼 만큼 즐겁습니다. 하루 종일 대화 없이 '혼자서 먹고, 자던 하루'에서 '대화하고, 웃고, 누군가를 의지하고 생각하는 하루'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뭐든지 얘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행복하다는 것


늘 그래 왔듯이 인생에는 '타인과의 관계'가 있기 마련이고 항상 지지자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녀의 아들은, 40여 년 전 가정을 파탄 낸 그에 대해 그녀와의 관계를 반대합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들의 삶에 이웃의 수군거림도, 과거 오래전 일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일들은 몇십 년이 지난 일들이고 그 일로 서로를 판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있고, 잊고 싶었고 용서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만, 평생 마음의 짊어진 진 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지독히도 외로웠던 서로에게 친구이자 연인이 되었습니다. 현재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은 그와 그녀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둘은 마을에서 벗어나 도시로의 여행을 떠납니다. 호텔에서 멋진 옷을 입고 춤을 춥니다.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What a difference a day made"라고... 하루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그렇게 그들은 바꾸었습니다. 외로웠고 상처 있던 삶에서 하루하루 누군가를 의지하는 행복한 삶으로 말이죠. 말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오고, 함께 있는 매 순간이 행복하기만 합니다. 


이제 그와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웃습니다. 
"우린 이제 더 이상 얘깃거리가 아니에요. 얘깃거리는커녕 아무도 관심 없어요"라고. 

그리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난 그냥 하루를 조용히 보내고, 밤에 당신이랑 대화하고 싶어요"



오롯이 '나'만일수는 없는 이유
'가족'이라는 것


세상은 그리 행복한 일상을 오래 주지는 않습니다. 지독하게도 말입니다. 아들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면서, 아들은 그녀에게 손자를 돌보며 함께 살자고 합니다. 그녀는 지금의 행복한 일상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밤중... 손자의 전화에 달려간 아들의 집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술에 취해 가슴속 품고 있었던 얘기를 꺼내놓습니다 "누나가 엠블런스에 실려가던 날, 그리고 그 날 이후 엄마는 내 곁에 없었잖아요... 몇 주동안 눈길을 주지 않았잖아요"라고. 그녀는 "누구를 원망한 적이 없다"라고 얘기하지만 이미 아들의 눈에는 그 오랜 세월의 슬픔이 가득합니다. 

그녀는 생각합니다. 늦었지만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고. 힘들지만, 그와의 일상을 놓아야겠다고 말입니다. 이웃에게 당당히 함께 잠을 자자고, 외로움을 견뎌보자고 그렇게 밤이 두렸고, 외로움이 싫었던 그녀가 다시 '간절하게 원했던 자신의 삶'을 내려놓습니다. 그녀에게는 돌보아야 할 '가족'이 먼저였던 거죠... 이제, 그녀는 아들과 손자와 함께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도 그녀를 만나기 전 그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간 그들의 밤은 여전히 외롭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녀에게 무언가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들은 다시 친구가 됩니다.

지독히도 외롭던 서로의 세상에 말이죠...


끝이 보이는 인생에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인데...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몰라도, 

그와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그려지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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