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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긴어게인 Mar 03. 2022

80 인생 그녀, 모든게 별일 아닐까?  

인생이란 놈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데...

그녀는 "모든게 다 별일이 아닐까?"


일에 대한 욕심, 평가를 잘 받으려는 욕심 모두 내려놓겠다고 다짐했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고!! 아둥바둥 일에 올인하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기로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쨌든 잘할려고, 책임질려고 노력했다. 리더라면 남의 탓, 환경 탓 해서는 안된다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잘 해 낼려고 했다. 야근, 주말 근무를 하면서도 노력했지만 돌아오는건 냉정한 평가다. 늘 일이 많은 리더에 불만을 갖는 팀원, 타이밍이 중요한데 마감일을 초과하게 된다. 이 모든 상황에 화가 난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일이라고. 인생이란 놈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도록 앞통수를 치는 적이 없다고.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니 다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아직 너무도 젊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일이다. 젠장   -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에서 -


하루가 버거운 날이면 되새겨 보곤 하는 드라마 대사다. 나에게는 아직 모든게 다 별일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불끈불끈 솟구치는 억울함과, 서러움에 멈춰 서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순례길을 걸으며 모든걸 내려 놓는다고 수없이 각오했다. 그리고 지금 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나에겐 모든게 다 별일이다.



그녀는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섰다.


내가 어릴 적 그녀는 농사를 지으며 8남매를 키우셨다. 아버지의 수입이 넉넉하지 않아 외할머니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 유지였던 외할머니의 논과 밭이 다른 사람의 명의로 넘어 갔다. 그 어린 시절에도 "어 저거 우리 할머니 논이었는데"라며 그녀에게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농사를 접고, 다른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업을 하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 나쁜 사람!! 어떻게든 좀 더 살아보려고 자식들 떼어 놓고 도시로 나와 처음 시작한 일이었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나 하던 그 무렵!! 그렇게 ‘배신’이 찾아왔다. ‘배신’과 ‘사기’ 앞에 웬만해선 안 무너질 수가 없다. 그런데, 그녀는 그 겨울을 이 악물며 독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다짐하며 견뎠다고 한다. 지금, 그녀는 그 친구들을 별일 아닌듯 만나고 기억할 수 있을까? 난 그녀의 친구들이 싫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혼자 감내하며 견뎌왔다


그녀는 43년생으로  올해 80세다. 그녀는 작년에 암 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했다. 다행히 초기였지만 발생 부위가 2곳이라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 처음 수술이 아니다. 담석증, 7시간의 허리 협착증, 시력, 인공무릎 수술, 그리고 암 수술까지!! 여러번의 수술을 하셨지만 늘 생계를 위해 일을 하셨다. 8남매를 두고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부모로서 짊어져야 할 무게를 혼자서 감당하셨다. 그녀는 최근 암 수술로 체력이 급속히 안 좋아지셨다. 하지만, 자식들이 다들 직장을 다니기에 어느 누구도 그녀 곁에서 돌봐 드리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8남내의 자식을 두었지만,  오롯이 혼자서 감내하고, 혼자 견뎌내고 있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모든게 별일 아닌게 되어 버리는 것은, 몸이 아파 포기하는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토록 좋아하시던 단풍구경을 마다하신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힘들다고 하신다. 좋은 음식을 드려도 맛이 없다 하신다. 그 오랜 시간 아픔을, 그 힘듦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녀도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이었다.


가끔, 그리움이 눈물이 되어 나타난다!! 그녀는 편찮으신 엄마를 바라만 봐야 했던 하나뿐인 외동딸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2년여 치매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평생을 의지하고 살아온, 외동딸, 모든 사랑을 주시던 그녀의 엄마가 본인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엄한 소리를 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고, 그러면서 함께 지내온 2년!!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손녀인 나도 하루하루 바라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딸인 그녀에게는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하루가 현실 그 자체였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속상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일을 나가면서도 마음 아팠을 것이고, 일을 하면서도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집에 돌아와서는 눈앞의 엄마 모습에 또 한번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의 힘들고 아픈 마음을 누가 알았을까? 나에게는 그 시절 그 생활이 그저 지긋지긋한 짜증 정도였을 뿐인데, 그녀는 그 시절이 후회된다고 지금도 말씀하신다. 몸이 많이 힘들어진 요즘, 그녀도 엄마가 보고 싶을까? 가끔 이야기 하신다. 꿈에 나타나셨다고,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고, 그러다 내 앞에서 눈물을 훔치시곤 한다. 그리고 이야기 하신다 "엄마가 보고 싶다" 라고.



그녀의 아들 바라기 인생, "아직 내겐 별일이다"


그녀의 8남매 중 7번째 아들이 태어났다. 동네 잔치를 했다. 그녀에게는 인생 최고의 기쁨이고 행복이었을 것이다. 딸이 많은 집에 아들 하나가 태어나다 보니, 순둥이처럼 말썽도 안피우고 잘 자랐다. 외고를 다닐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동네 아이들이랑 잘 어울리며 축구도 잘하고 씩씩하게 잘 자랐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런 소중한 아들이 속을 썩인다. 대학과 취업에 있어 ...자꾸만 원하지 않는 본인만의 방향으로 간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그런 그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때 그녀는 입에 대지도 못하는 술을 몇개월 동안 매일 밤 마셨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아들의 결혼을 허락했다. 그녀의 깊은 마음을 그 아들은 알런지. 아들 부부가 잘 사는 것 만으로도 더는 바랄게 없어야 하겠지만, 서운하기만 하다. 명절 그리고 그녀의 생신때 아들은 겨우 얼굴을 내민다. 아들 부부에게도 바쁘게 살아가는 그들만의 인생이 있다. 아들 부부의 성향탓인지 자상한 전화나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기가 어렵나보다. 오늘도 그녀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반 걱정반으로 새벽까지 잠 못 이룬다. 그녀도 아들 관련한 일 만큼은 별일 아닌가 보다!!



나, 모든게 별게 아닌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속에서 살아가며 상대를 만족시킨다는 것, 어려운 일이다. 다른 말로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업무적으로 엮인 관계는 더욱 쉽지 않다. 갑과 을, 리더와 팀원, 상사와 동료... 누구와 어디까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지내야 하는걸까? 정답도 없고 어렵다. 차라리 그 관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라면 쉽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 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생각 차이’가 나의 오늘 하루를 또 힘들게 한다


나보다 오랜 인생을 사신 그녀, 지금쯤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살아가고 계시는 엄마. 지금 그녀에게 세상은 ‘모든게 다 별일이 아닐까?.’ 시간이 흐르고 좀 더 세월을 경험하면, 내게도 '모든게 별일 아닌’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 정리 안된 물음을 스스로에게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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