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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긴어게인 Feb 06. 2022

아버지가 그리운 날엔 막걸리와 배추전

오래 함께 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내가 살만해지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하다


대학교를 마치고 지방에서 첫 직장을 다니다가 2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을 구한 것도 아니고, 서울에서 직장을 다녀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 쥐꼬리만큼 저축한 돈은 물가 높은 서울 생활에, 이곳저곳 강의에 모두 다 쓰면서 생활이 빠듯했다. 직장을 구했지만, 여유가 없었다. 언니와 동생 그리고 나 셋이 옥탑방에서 같이 살며 옥신각신 하고, 직장 다니고, 미래를 위해 공부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말이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용돈 한번 챙겨 드리지 못했다.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나중에 돈 많이 벌면이라는 언제일지 모르는 먼 미래로 떠넘기며 좋은 옷 한 벌 사 드리지도 못했고, 좋은 곳 구경시켜 드리지 못했다. 내 살기가 급해서... 아버지는 오래 곁에 계실 거라고....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얼마 되지 않은 적은 금액이라도 드리며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술 사 드세요"라고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술을 약간 드셨을 때 환하게 웃으시던 것처럼 웃으셨을텐데 말이다. 


얼마 전 이사를 했다. 20여년 직장 생활만에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했다. 혼자 살기에 작지 않은 평수이다. 직장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미있는 위치도 올라가봤고, 욕심내면 끝이 없지만 충분히 괜찮은 연봉이다. 그리고 아직 전문가로서 더 일할 수 있는 날들이 있다. "고생했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라고 스스로를 토닥인다. 이사를 온 것이 뭔가 큰일을 해낸것 처럼 뿌듯하기도 하고 맘이 편안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말이다. 내 맘이 편안해지니 효도하지 못한 아버지가 더 생각나고 그립다. 그 그리움에는 미안함과 죄송함이 더 크게 자리 잡은 것 같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막걸리와 배추전


아버지는 거의 매일 막걸리를 드셨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늘 술을 드신 모습... 어떤 날은 살짝 드셔서 기분이 좋아 웃으시는 모습... 어떤 날은 너무 많이 드셔셔 몸을 못 가누는 모습까지... 항상 그런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엄마의 잔소리에 술을 못 드시게 되면, 아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동네 슈퍼(구판장)에 가신다. 나에게 과자 한 봉지 쥐어주고, 내가 과자를 사달라고 해서 데리고 갔다고 엄마에게 둘러댈 핑계거리 하나를 만드신 셈이다. 어쩌다 엄마의 잔소리에 술을 못 드신 날엔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예전에는 주전자를 갖고 가서 받아 왔는데, 나는 심부름값으로 주어지는 껌 한 통에 좋아라 하면서 주전자를 들고 뛰어 다녀 왔다. 길바닥에 술을 조금씩 흘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버지는 물론 나도 엄마에게 같이 야단을 맞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버지가 살아가는 유일한 낙이셨던 것 같다. 너무나 가난했던 살림에 허걱 할 만큼 많은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무게감!! 책임감!! 어쩌면 술을 드시고 잊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집에서 막걸리를 드실 때에는 좋아하는 안주가 있었다. 바로 배추전이다. 초등학생이었지만 제법 음식을 할 줄 알았다. 엄마가 시내에서 식당을 하셨기 때문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내가 식구들 저녁을 준비했다. 물론 할머니가 계셨고 난 할머니 보조였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오징어젓갈 양념과 배추전은 내 담당이었다. 아버지는 엄마보다, 언니보다 내가 부친 배추전을 더 좋아하셨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버지가 술 한잔 드시고 배추전 드시며 웃으시는 모습은 내게 좋은 그리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가 그리운 날엔 막걸리와 배추전


토요일 오후 뒷산 산책을 하는데, 전날 조금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쌓여 있다. 아버지 또래의 아저씨들이 많아서일까 아버지 생각이 난다. 웅장하고 멋진 길이 아닐지라도 소소한 뒷동산 산책길을 같이 걸을 수 있었으면 참 행복했을텐데 말이다. 

"그래 이런 날엔 아버지가 좋아하던 막걸리와 배추전을 먹어 보자"라고 생각하고 배추전을 몇 장 구웠다. 그리고 막걸리 한잔 아니 한병!! 다 마셨다.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효도 엄마에게 잘하자라고 다시 다짐해본다. 뭐든지 함께 할 때, 곁에 있을 때가 가장 소중한 것임을 새삼 다시 깨달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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