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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j Sep 05. 2022

오후 세시, 피아노 학원으로 들어가는 태권도 복 소년

일년만에 한국에 왔다. 그리고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고등학교때부터 친했지만 몇년동안 보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밤새 놀 수 있고 밤새 일을 하면서도 깔깔 거리며 웃을 수 있었던 스무살의 우리들은 어느덧 삼십대의 문턱을 갓 넘은,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결혼과 자차, 자가 이런 주제의 이야기가 멀게만 느껴져도 그런것을 묻는 이들은 많은, 그런 나이의 청년들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는 이렇게 삶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해도 넌 뭐가 그렇게 심각하냐고 눈치 주는 사람이 없는 이런 자리가 귀하다고 했다. 문득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낭만과 철학 보다는 가진 것과 앞으로 더 가질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어른스러운 것이라면 우리는 아직 이 세상에서 철부지인지도 모른다. 

어제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내 마음이 말랑해졌나보다. 오늘은 오후에 병원을 가려고 아파트 상가에 들렀다가 하교 후 학원에 가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태권도 복을 아무렇게나 입고 비오는 날 슬리퍼를 질질 끈채로 피아노 학원에 들어가는 꼬마의 모습에서 우리의 그 시절이 보였다. 낭만이 있었던 그 때. 학교에 다녀와서 설탕 뿌린 토마토를 먹고 놀다가 피아노든 태권도든 다녀와 해질녘까지 놀고 집에 들어왔던 그 때의 낭만. 

이 얘기를 단체 톡방에 올리니, 다들 피아노 학원에서 어떻게 농땡이를 피웠는지 이야기 꽃이 폈다. 

피아노 밑에 코딱지를 파 묻히고, 연습을 다 채우지 않았는데도 동그라미에 색칠을 채워 넣는, 그런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행복한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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