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결정되고, 줄거리가 새롭게 완성되자 글 쓰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동안 여러 차례 무너뜨리고, 다시 쌓으며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렇게 치른 시행착오가 내용을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 것 같기도 했다. 해가 바뀌어여름에 접어들자 골격이 잡혔다. 이 즈음에 소설의 제목을 '나 그리고 또 나'로 바꿨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지난해 7월 초. 지인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이 왔다. 두 개의 일자리를 준비했으니 택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몇 년 전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녀가 다니는 회사에 허드렛일이라도 좋으니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때마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며 그녀가 미안해하곤 해서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애초에 진지하게 청탁을 한 것도 아니어서 잊고 있었는데 불쑥 제안을 한 것이다.
하나는 빌딩관리인이었다. 격일로 근무하며 맞교대 하는 것이어서 몸은 고달파도 스트레스는 크지 않을 것 같았고 글 쓰는 시간도 넉넉할 것 같았다.또 하나의 자리는 관리 부문을 책임지는 임원이었다. 오랫동안 해온 것이어서 익숙한 자리이니 적응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지인은 당연히 임원을 염두에 두고 제안했겠지만 나는 빌딩관리인에 마음이 더 끌렸다.
지인과 회사는 입사해서 관리 부문을 맡아주길 강력히 원했다. 나를 능력을 인정해 주는 회사가 고맙기는 했지만 그 일은 원하는 생활이 아니어서 고심 끝에 거절했다. 오랫동안 조직생활을 벗어나 편하게 글 쓰며 지낸 버릇도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덩달아 빌딩관리인 자리도 날아갔다.
내가 워낙 완강하게 거절하자 지인은 3개월간 근무해 보고 계속 근무 여부를 결정하자고 했다. 그녀의 배려를 계속 몰라라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입사했다. 회사 업무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오랜 백수 생활에 익숙해진 습관을 바꾸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 것도, 종일 회사 업무에 내 시간을 묶어둬야 하는 것도 불편했던 것이다. 게다가 회사 상황도 녹녹지 않았다. 관리 직원들의 이직이 많아 업무 공백이 컸던 것이다. 회사가 관리 임원 채용을 서둘렀던 이유였다.
하나의 문이 열리면 다른 문이 닫힌다고 했던가? 정신없이 회사 업무에 매달리다 보니 글을 쓸 여력이 없었다. 마무리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신작 소설 '나 그리고 또 나'는 어느덧 뒤로 밀려나 있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작가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졌다.
우여곡절 끝에 '나 그리고 또 나'를 탈고했다. 잠이 부족하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원고를 다듬었지만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그래도 글을 더 다듬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즈음에 정체를 숨기고 있던 갈등이 다시 꿈틀거렸다. 이런 식의 회사생활이 가치가 있을까? 경제적으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지만 글을 쓰고, 삶을 즐길 시간을 갖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마침내 돈과 시간이 자기가 더 중요하다며 경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