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

by 아마도난

‘작가님에 대한 아주 극히 적은 소식을 듣고 반가움에 문자 보냅니다. 『사비로 가는 길』 -달빛 젖은 꿈 하나- 오랫동안 한편에 품어오다 보름달처럼 환하게 발현하였군요.’ 낯선 사람으로부터 영문을 알 수 없는 문자가 카카오톡으로 들어왔다. 말투로 봐서는 나를 아는 사람 같은데 짐작이 가지 않았다. 누굴까 하고 궁금해하고 있는데 또다시 문자가 들어왔다. ‘조급해하지 않고 참모습을 찾아온 그 여정 아름답습니다.’ 여전히 짐작이 가지 않는 상대방이었다. 카카오톡 화면에는 등록되지 않은 이름이니 조심하라는 경고문구가 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낯선 사람이지만 나를 아는 사람 같으니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과 요즘 보이스피싱이 얼마나 정교한데 경거망동하는 거야 하는 생각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안전이 먼저여서 무시하기로 했다.


그게 뜻대로 되면 오죽 좋을까? 상대방은 자기의 메시지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하려는지 ‘그 모습 베토벤의 ’ 월광 소나타‘로 들려옵니다. 축하합니다.’라는 문자와 함께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내왔다. 궁금했다. 여전히 경계심이 작동하기는 했지만 호기심도 부쩍 들기 시작했다. 설사 보이스피싱에 걸려들더라도 누군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 것이다. 망설임 끝에 ‘저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누군지 물어도 될까요?’라고 문자를 보내자 황당하게도 ‘Moonhee Moonlight’라는 대답이 즉시 돌아왔다. 이건 또 뭐야? 나하고 수수께끼 놀이를 하자는 거야?

아는 사람 중에 문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누굴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굳이 있다면 왕년의 여배우 ‘문 희’ 정도라고나 할까? 그녀와는 스크린을 통해 본 게 전부이니 내게 문자를 보내올 리는 만무하고…. 범위를 넓혀봤다. 대학 다닐 때 미팅에서 만났던 여자? 아니면 회사 다닐 때 업무상 만났던 여자?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기억을 더듬고 또 더듬어 봐도 문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는 사람이 없어서 문자 메시지를 무시하기로 하고 카카오톡에서 나왔다.


카카오톡에서 빠져나오면 그것으로 끝일까? 아니었다. 문희라는 이름은 마치 내가 누군지 맞혀보라는 듯 환영처럼 시도 때도 없이 뇌리를 비집고 나타났다. 그 이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오히려 올가미처럼 점점 옥죄어 왔다. 답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해하다가 문득 왜 문희가 여자 이름이라고 단정 지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 문희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떠올랐다. 이 가운데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하며 핸드폰에 저장된 주소록을 검색했다. 없었다. 문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누구지? 이제는 짜증이 나려고 했다. 그렇다면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Moonlight가 무슨 의미입니까’라고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되고,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지요? Moonlight가 문희이고 월광입니다.’라는 대답이 들어왔다. 이거야 원! 그러다가 ‘희’가 계집 희(姬)가 아니고 빛날 희(熙)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야 월광의 광(光) 자와도 뜻이 통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유레카! 최근에 만난 적이 없는 동창일 거라는 심증을 굳히며 마지막 질문을 보냈다. ‘혹시 남자분이십니까?’


바로 답을 주던 상대방이 이번에는 뜸을 들였다. ‘찾았다! 이렇게 짓궂은 친구가 있나. 누군지 몰라도 만나면 술 한 잔 해야지.’ 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 있다가 『사비로 가는 길』 때문에 소식을 전해 온 친구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한참이 지나 대답이 왔다. ‘여자입니다.’ 맙소사! 남자가 아니고 여자라고? 그렇게 부산을 떨었는데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문희,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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