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요즘은 5일장이라고 해야 이해가 빠를까? 장날의 풍경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예전의 장날은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걸어 다닐 수가 없었다.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함석을 얻은, 벽도 없고 문도 없는 가건물들은 장날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가게로 변신했다. 포목전, 생필품 전 등 업종별로 몰려 있는 모습은 서울의 광장시장이나 중부시장의 축소판이었다.
한쪽에는 쇠전도 섰다. 쇠전에서는 소만 사고파는 게 아니었다. 염소도 있고 돼지도 보였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먹거리가 빠질까? 아주 오래전에는 국수가 최고의 먹거리였다고 한다. 그 전통이 남아 시장이 발달했던 곳에는 지금도 3대, 4대를 이어 내려오는 국수가게들이 터줏대감처럼 남아있다. 내가 어릴 적에는 국밥이 인기였다. 커다란 가마솥에 각종 야채와 고기를 넣고 벌겋게 끓여내는 장터국밥은 생각만으로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그 국밥 한 그릇 먹고 싶어 보채다 빗자루 들고 쫓아오는 어머니를 향해 어쩌다 한 번 사달라는데 그거 한 그릇을 안 사주냐고 볼멘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 인구는 3천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5천만 명으로 늘었다. 나라 인구는 늘었지만 부여군 인구는 다른 농촌도시와 마찬가지로 급격히 줄었다. 18만 명이었던 인구가 지금은 1/3 수준인 6만 5천 명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그 인구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사람이 줄었으니 시장이 활력을 잃는 것은 당연한 이치. 장날의 풍경이 변했고, 장을 찾는 사람도 바뀌었다. 나무 기둥 위에 함석만 얹혀있던 가건물 대신 번듯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끈끈한 사람 냄새는 가건물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부여 장날, 시장에 갔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물건은 없었다. 대신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장에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있었다. 특히 건물에 기대앉아 자그마한 보따리를 펼쳐놓은 사람들은 모두 나이 든 여자들이었다.
파는 물건이라고 해야 야채나 나물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양도 많지 않았다.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올 수 있을 만큼만 가져온 모양이다. 저것을 모두 팔면 얼마나 되는 돈을 손에 쥐게 될까? 그 돈은 생계유지를 위해 쓰일까 아니면 용돈으로 쓰일까? 노인들은 햇볕에 그을리고 주름이 깊게 팬 얼굴로 열심히 호객하고 있지만 활기가 넘쳐 보이지는 않았다. 도시가 늙어서 사람들이 활력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늙어서 도시가 쇠락하는 것일까?
기웃기웃하며 지나다 여러 가지 야채와 함께 깎은 밤과 깐 은행을 비닐봉지에 담아 파는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 옆에 앉은 노인도 비슷한 물건을 팔고 있었다. 8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두 여자는 눈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심히 물건을 들이대고 있었다. 내가 밤에 관심을 보이자 그들은 경쟁적으로 밤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마치 내게 밤을 팔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표정이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각각 1 봉지씩 사주기에는 밤이 너무 많았다. 잠시 망설이다 한 사람에게서는 밤을, 다른 사람에게서는 은행을 샀다. 그 자리를 떠나며 무심코 뒤돌아보다 은행을 판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녀는 밤 봉지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 모습에 손사래를 치며 발걸음을 재게 놀려야 했다.
비닐봉지를 받아 든 아내가 고개를 돌리며 황당한 표정으로 은행을 들어 보였다. 씻으려고 봉지를 풀었다가 성한 것 하나 없이 모두 곯아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기가 막혔다. 노인이 일부러 상한 물건을…? 아닐 것이다. 푼돈이라도 만들어보려고 손에 닿는 대로 물건을 들고 나왔다가 이런 사단이 벌어졌을 게다. 그나저나 상한 은행을 어떻게 하지? 세월에게 물어달라고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