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워도 너무 어려워

by 아마도난

마음이 급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잰걸음을 놀리면서도 연신 시계로 눈이 갔다. 늦으면 자리가 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집이어서 행여 늦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근처에 왔을 때 다행히 먼저 도착한 친구들로부터 자리를 확보했다는 연락이 왔다. 안도하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문 앞에는 기다란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이나 일본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제법 섞여 있는 사이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려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후래자 3배’의 벌칙이 날아들었다. 소주 석 잔을 연거푸 마시고 났더니 후끈하고 술기운이 오른다. 분위기를 즐길 채비가 끝난 것이다.


눈앞에는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곳을 친구들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길을 따라가니 수증기 사이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다리도 살짝 벌린 요염한 실루엣들이 보였다. 수증기 사이로 드러난 몸매들은 군살 하나 없이 날씬했고 피부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윳빛보다 더 뽀얀 것 같았다. 보일 듯 말 듯 짙은 수증기 사이로 모습이 비칠 때마다 친구들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곤 했다. 비록 아무도 말은 하지 않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실루엣들은 물이 뜨거운지 아니면 사내들의 탐욕스러운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몸을 살짝 비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어김없이 들려왔다. 사내들의 눈을 더 이상 마주하기가 싫어서였을까? 실루엣들이 훌러덩 몸을 뒤집었다. 순간 탐스럽고 요염한 엉덩이가 물 위로 드러났다. 동시에 ‘꿀꺽’하고 침 넘기는 소리가 스테레오로 들려왔다.


“저 친구들 지금 이를 갈고 있겠는데? 이생망 했지만 다음 생에서는 기필코 복수하겠다고 말이야.”

“야, 그게 무슨 소리야, 갑분싸 하잖아!”

“갑분싸라니… 이생망이 어때서?”

“이생망이 어떻다는 게 아니고 복수 운운하니 그렇지.”


침묵을 깨고 두 친구가 대화를 나누자 나머지 친구들도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나서 다행이라는 듯 끼어들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싫존주의를 받아들여야지.”

“난 싫존주의 맘에 안 들어. 요즘 젊은 애들이야 싫으면 싫다고 직설적으로 얘기하지만 우리 세대는 어디 그런가? 우리가 젊었을 때는 싫어도 내색 안 하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잖아. 젊은 친구들은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겠지만 공동체 생활을 하려면 우리가 배운 게 옳다고 봐.”


입으로는 열심히 논쟁을 하면서도 눈은 실루엣들에게서 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마른침 대신 군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인내심에 한계가 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우리 사회에는 너 같은 사람이 필요해. 싫으면 싫다고 얘기하고, 생각이 다르면 다르다고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이트 불편러’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맞아, 화이트 불편러들이 많이 나와야 해. 그래야 정치권이든 부유층이든 알량한 권력 좀 쥐었다고 제 멋대로 하려는 작자들이 조금이라도 자중하겠지. 안 그래?”

“그래도 조심해라. 함부로 말했다가는 자칫 ‘프로 불편러’라고 욕먹기 십상이니까.”

“프로 불편러고 나발이고 이제 다 익은 것 같은데 먹자. 아줌마, 여기! 잘라주세요!”


한 친구가 실루엣을 향해 행복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나머지 친구들도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술잔이 몇 번 오고 가더니 실루엣들은 순식간에 뼈만 남기고 사라졌다. 늑대 같은 사내 여섯에게 닭 두 마리는 부족했던 것이다.

“닭 한 마리 더 시킬까? 아니면 사리를 시킬까?”

“JMT에 와서 무슨 소리야. 당연히 닭을 더 먹어야지.”

“JMT?”

“존맛탱을 영어 약자로 JMT라고 쓴다며?”

“하여튼 요즘 애들은….”

“애들이 쓰는 말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서울의 중류 계급이 사용하는 말이 표준말이야. 요즘 애들이 쓰는 말이 장차 표준말이 될 수도 있다고. 그러니 비속어(卑俗語)나 약어(略語)라고 무시하지 말고 배워. 나중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말문이 터지니 별의별 이야기가 다 쏟아져 나왔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와의 갈등이 단연 으뜸이었다.


태어나서부터 부족함을 모르고 자란 세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질 수 있는 첫 세대. 바로 베이비붐 에코세대라고도 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열심히 살아라.’, ‘노력해라’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다. 그보다는 자율과 권한을 중요시하는 세대다. 그들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라거나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 수당이나 주세요.’라고 외친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야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밀레니얼 세대가 쓰는 말, 그들의 생각을 두고 열띤 수다를 떤 뒤 음식점을 나서는데 젊은 아가씨가 친구에게 ‘난 애빼시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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