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서른? 환장하것네!

by 아마도난

“이다음에 너희들은 절대 장사는 하지 마라. 만약 장사를 하게 되더라도 어음거래는 하지 말아라!”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자식들을 가르치고, 살림살이도 늘렸지만 부모님은 자식들이 월급쟁이로 살기를 원해서 틈만 나면 하던 말이다.



아버지는 국내에서 가장 큰 학습참고서 출판사의 부여 대리점을 운영했다. 당시 출판사 사장은 매년 1월 전국을 순회하며 대리점주들을 초청하여 한 해 동안의 영업방침을 설명하고 신간을 소개했다. 그 모임에서 대리점주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기대를 갖기보다 커다란 심리적 압박을 먼저 느꼈다고 했다. 행사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가 어음 발행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사장은 대리점주들을 개별적으로 면담하며 당해 연도 매출 목표를 통보하고, 그에 상응하는 어음을 월별로 할당하여 발행하도록 했다. 어음은 상반기에 전체 발행액의 70%를 결제하도록 되어 있어 대부분의 대리점주들은 하루하루를 허겁지겁 살아야만 했다.


아버지는 책을 팔기 위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어머니는 당좌수표와 어음결제대금을 마련하느라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는 것이 일과였다. 숨 돌릴 여유도 없이 살아오다 오십 대 초반이 되던 어느 해에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도 정신력이 크게 약화됐다. 아버지는 7형제 중 둘째였는데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모두 50대 초반에 돌아가셨다. 이게 다 집안 내력이라며 아버지도 죽을 때가 머지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심한 감기라도 걸리면 집안 내력을 떠올렸고, 기분이 우울해지면 죽음을 입에 올렸다.



그렇게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살다 환갑이 되었다.

환갑이 되던 해 아버지의 건강은 무척 나빴다. 뇌출혈의 후유증이 아버지를 놔주지 않은 것이다. 환갑이 다가오자 어머니의 마음이 급해졌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가 할아버지나 큰아버지처럼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네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주셔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요즘 환갑잔치하면 욕먹는다고 하는데 그래도 나는 해야겠다.”


어머니의 눈빛은 간절했다. 일가친척과 아버지의 친구들을 초청하여 조촐한 환갑잔치를 열었다. 그날 아버지는 모처럼 즐거워했고 어머니는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무병장수(無病長壽)나 만수무강(萬壽無疆)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소망일 것이다. 조선시대 임금의 평균 수명은 47세였다. 양반들도 56세를 넘기지 못했다. 일반 백성들은 40세도 넘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하니 환갑까지 사는 것은 축복이고 소망이었을 것이다. 뜻밖에도 내시들은 7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내시들의 장수 비결은 스트레스가 적은 삶을 살아서였을까? 아버지는 평생 동안 어음이라는 괴물이 가져온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다. 그래도 집안 내력(?)을 이겨내고 조선시대 양반들보다는 오래 살았으니 어머니가 감사의 눈물을 흘릴 만도 했다.

자료 :PIXABAY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일까? 아니,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모든 사람의 바램일까? 친구가 본인의 블로그에 ‘아따, 환장하것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아들, 딸의 ‘아빠 환갑 선물은 뭘로 할까요?’라는 물음에 ‘아니 내가 벌써 환갑이라고?’하며 놀라는 내용이다.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환갑이 되기 전에 일선에서 밀어내고 있다. 나이 들어 밀려난 게 서러워서였을까? 어떤 이는 환갑 대신 두 번째 서른이라는 말로 바꿔 쓰기도 한다. 서른이면 한창 좋을 청춘인데 두 번째 서른도 청춘일까? 어쩌다 보니 준비한 것 하나도 없이 나도 환갑이, 두 번째 서른이 되었다. 환장하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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