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Clear!

by 아마도난

끝이 없을 것 같던 열대야가 변덕스러운 태풍 ‘솔릭’과 함께 사라져 버린 8월의 마지막 날, 하루쯤 젊은이들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머리가 시킨 일이 아니다. 마음이 앞장섰다. 반바지에 민소매 T-셔츠, 샌들을 신고 햄버거 가게에 갔다. 젊은 친구들로 북적거리는 틈바구니에서 좌석부터 확보한 다음 메뉴를 선택하고 핸드폰으로 할인쿠폰을 다운로드하였다. 콜라와 튀김 감자가 같이 나오는 세트메뉴다. 할인율이 37%로 칼국수 한 그릇을 더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 친구처럼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맛있게 햄버거를 먹었다. Mission Clear!






해 질 녘에 대학로로 갔다. 컬트 장르의 개척자라는 평을 듣는 뮤지컬 ‘록키 호러 쑈’를 보기 위해서였다. 매표소에 가니 이미 제법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다. 입장권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공연 시작 전에 저녁을 먹기 위해서였다.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다 분식점으로 들어갔다. 분식점에는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가장 많이 먹는 것을 주문했다. 순대 한 접시, 떡볶이 한 접시 그리고 김밥 한 줄. 맛있게 먹었다. 배도 불렀다. Mission Clear!






‘컬트’란 소수의 마니아들만이 광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을 말한다. 당연히 관객층이 엷다. ‘록키 호러 쑈’도 1973년 런던의 로열 코트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당시에는 흥행에서 처절하게 참패했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거대한 팬덤(Fandom, 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만들어지면서 이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 어디선가 상영 중인 영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영화도, 뮤지컬도 무대는 화려하지만 줄거리는 영락없는 공상과학 만화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은 자넷은 그 자리에서 남자 친구 브래드의 청혼을 받고 약혼한다. 그들은 고교 은사 스캇 박사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가 폭우를 만나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음산한 분위기의 저택을 방문한다. 그들을 맞이한 사람은 꼽추 리프리프. 두 사람은 리프리프의 안내로 트란실바니아 은하계 소속 트랜섹슈얼 행성에서 온 프랑큰 퍼트 박사를 만나 기상천외한 파티에 초대받는다. 그들은 선정적인 노래와 춤에 이끌려 파티 분위기에 빠져든다. 밤이 깊어지자 양성애자인 프랑큰 박사는 변장을 하고 자넷과 브래드의 잠자리에 차례로 찾아가 성관계를 갖는다. 브래드는 혼란에 빠지고 자넷은 성(性)에 눈을 떠 프랑큰 박사가 만든 근육질의 남자 록키와 사랑에 빠진다. 이때 스캇 박사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꼬여간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에는 『The Time Warp』라는 노래에 맞춘 춤 동작이 반복해서 상영되고 있었다. 일부 관객들이 동작을 따라 했지만 나는 멀뚱하게 바라만 봤다. 공연이 시작되자 맨 앞줄에 앉은 관객들은 거침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배우들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하는데 내 앞줄에 앉아 있던 젊은 아가씨가 고개를 돌려 나를 힐끔 보았다. 처음엔 무심히 봐 넘겼는데 같은 행동이 몇 번씩 반복되다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내가 그렇게 잘 생겼어? 그렇다고 자주 훔쳐보면 마누라가 질투해!’라고 말할 뻔했다.




공연이 계속되면서 배우들이 유도하는 대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고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배우들의 춤을 따라, 관객들의 열띤 호응에 맞춰 내 머리가 좌우로 리듬을 타고 오른발이 까딱까딱 박자를 맞추더니 곧이어 왼발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내가 온몸으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챈 앞자리 아가씨의 동작이 대담해졌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코르셋을 입고 섹시한 몸짓을 하던 프랑큰 박사가 큰 소리로 ‘소리 질러!’하고 부르짖자 관객들도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며 일제히 ‘와아!’하고 외치고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앞자리의 아가씨도 나를 보며 고개를 까딱하더니(어쩌면 나 혼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벌떡 일어나 『The Time Warp』에 맞춰 격정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 동작이 통통 튄다. 아가씨의 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예쁘고 신이 났다. 이런 것인 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익혀둘 걸….





뮤지컬 후반부에 ‘닫힌 마음을 열어요. 열린 마음을 두려워 말아요. 시작은 늘 끝 하고 같은 거지.’라는 대사가 나왔다. B급 공연에 이렇게 멋진 대사가 숨어 있다니! 감탄하고 있을 때 프랑큰 박사가 격정적인 몸짓과 함께 ‘꿈만 꾸지 말고 직접 해봐!’하고 외쳤다. 맞아! 내가 언제는 춤꾼이었더냐? 벌떡 일어나 둠싯둠싯 흔들었다. 앞자리 아가씨의 춤 동작은 더욱 격렬해졌고 더욱더 유연해졌다. 그루브를 제대로 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려, 젊음은 좋은 것이여!’하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고 있을 때 프랑큰 박사의 외침이 또다시 들려왔다. ‘소리 질러!’ 그 외침에 호응하듯 이번에는 나도 ‘와아!’하고 목청이 터지라고 외쳤다. 뜻밖의 함성에 마누라가 당황해서 자리에 앉히려고 내 팔을 잡아끌었다. 이제 와서 날 보고 어떡하라고. 마누라에게 싱긋 웃음을 보내며 달아오른 분위기에 온 몸을 맡겼다. Mission Cl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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