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조이, 무대 밖의 조이

연극 '킬미나우'를 보고

by 아마도난



어둠 속에서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 연극은 무대에 불이 환하게 밝혀지며 17살 된 아들을 목욕시키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이크와 그의 아들인 조이다. 조이는 지체장애아다. 뒤틀린 입으로 하는 그의 말도 처음 듣는 사람은 알아듣기가 어렵다. 조이는 “어떤 여자가 괴물 같은 나를 안아주겠어?” 라며 상스러운 욕도 하고 아버지의 말에 반항심도 보인다. 행동거지에는 장애가 있지만 생각에는 장애가 없는, 일반인과 똑같은 소년인 것이다. 제이크는 조이의 몸을 닦아주며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이 너를 괴롭히면 휠체어 바퀴로 발등을 밟아!” 하며 함께 낄낄거린다. 영락없이 아들과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는 아빠의 모습이다. 사실 촉망받는 작가였던 제이크는 조이가 어렸을 때 아내와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 사건 이후 혼자서는 대소변도 해결하지 못하는 조이를 위해 “나한텐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어. 나한테 나는 없어!”라며 작가의 삶을 포기하고 아들에게 헌신한다.





연극은 불편하고 힘들지만 장애를 이유로 동정을 구걸하지 않는다. 고통조차도 가벼운 농담으로 넘기며 담담하게 장애를 가진 삶을 그려낸다. 대사와 행동은 슬랩스틱(과장된 동작이나 소리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가볍지만 그렇다고 무거운 주제가 가려질까? 연극에서는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조이는 보통사람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도 지체장애아와 정상아가 같은 공간에서 어울리며 생활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지체장애아를 위한 학교를 짓기 위해 장애아들의 어머니들이 무릎 꿇고 사정한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 사회는 어떤 태도를 보였던가?


사춘기에 접어든 조이에게 신체상의 변화가 나타난다. 목욕을 하다 제이크의 손길에 자극을 받아 성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제이크는 발기(勃起)된 조이를 보며 “그렇게 조이가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더 늘어났다.”라고 한탄한다. 일반인들이라면 성장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텐데 이들에게는 난감한 일이 생긴 것이다. 제이크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자위를 도와주기로 한다. 조이를 목욕시키는 날, “조이! 태블릿 PC에서 섹시한 여자 봤지? 그 여자를 생각해. 아빠는 여기 없어. 이 손은 그 여자의 손이야.” 하며 행동으로 옮긴다. 잠시 후 아들은 쾌감을 느끼며 신음 소리를 낸다. 그 신음소리에 제이크의 울먹임이 겹쳐진다. 웃프다. 연극은 지체장애인의 성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시간이 지나 제이크가 조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누가 해줄 수 있을까? 아빠 말고 피붙이라고는 고모밖에 없는데 고모가 조카에게 해줄 수 있을까? 만약 아들이 아니고 딸이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반인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일이 이들에게는 난제였던 것이다.




고모 트와일라는 조이에게 태블릿 PC를 선물한다. 친구가 거의 없는 조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 태블릿 PC에 조이의 유일한 친구인 라우디가 좀비 게임을 설치해준다. 자신이 좀비로 변하기 전에 자신을 죽여 달라며 남자가 ‘Kill me now!’를 외치는 게임이다. 바로 연극의 제목이다. ‘킬미나우’는 연극의 또 다른 주제인 안락사 문제와도 연결된다.


조이는 자기를 편견 없이 대해주는 인터넷 세계에 점점 빠져든다. 라우디가 그들은 진짜 친구가 아니라고 비웃지만 조이는 “인터넷에서는 나도 보통사람이야!”라고 반박한다. 보통사람이고 싶은 그 절규가 조이만의 것일까?




조이에게 헌신하던 제이크가 불치의 병에 걸린다. 하루가 다르게 통증이 심해지고 마침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장애로 인한 어려움과 괴로움을 잘 아는 조이는 누구보다 아빠의 절망과 고통을 깊이 이해한다. 마침내 인간답게 ‘남은 삶’을 마치고 싶어 하는 제이크에게 조이는 안락사를 제안한다. 반면 제이크의 여동생 트와일라는 “네 아빠만이 아니라 내 오빠이기도 해”하며 안락사를 강력하게 반대한다. 제이크는 아들이 게임을 하며 '킬미나우'를 외칠 때마다 그 말을 ‘Heal me now!’로 들었다며 장애가 있는, 자립능력이 없는 아들만 남겨두고 죽을 수 없다고 조바심을 낸다. 세 사람의 생각이 모두 다르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들 각자의 생각에 모두 공감이 간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진 제이크는 조이에게 “아빠 좀 씻겨줄래?”하며 마지막 부탁을 한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들에게 황당하지만 간절한 부탁을 한 것이다. 자기가 하겠다는 라우디에게 조이는 “아니야, 내가 할 거야. 아빠니까. 우리 아빠니까.”라고 말한다. 도대체 핏줄이 뭐라고….


연극이 시작될 때 조이가 누워있던 욕조에 이번에는 제이크가 약을 먹고 눕는다. 조이도 제이크도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은 욕조는 두 사람에게 무엇일까? 조이가 아빠가 쓴 책의 구절을 외운다. 제이크의 연인인 로빈이 몇 번씩 읽어준 내용이다.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완벽한 존재다. 태어나는 그 순간, 그 존재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든다.” 제이크가 아들에게 들려주기를 주저했던 그 대목을 조이가 한마디 한 마디 힘겹게 토해 냈다. 지체장애인에게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


그때 어디선가 ‘훌쩍’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전염성이라도 있는지 객석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조이가 절규하듯 문장 외는 소리를 들으며 제이크는 ‘인간답게’ 죽어간다. 조이는 무대 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무대 밖에도 조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무대 밖의 조이는 누가 관심을, 사랑을 주지? 연극이 끝나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차라리 목 놓아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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