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by 아마도난

대학생이던 해의 이맘때, 시골에 살던 큰아버지가 위궤양 치료를 위해 서울의 대형병원에 입원했다. 아버지 형제들은 일곱 분이었는데 모두 공평하게 논 2마지기 남짓씩 물려받았다. 2마지기 논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큰 아버지는 논을 처분하고 만화방을 시작했다. 몇십 년 전 얘기이니 논값은 오죽했고 만화방은 또 어땠겠는가? 하지만 안 쓰고 안 먹고 악착같이 돈을 벌어 논이며 집을 사들여 말년에는 상당한 재산을 일구셨다.


사실상 맨손으로 시작하여 큰돈을 모으는 동안 큰아버지는 무척 냉정했고 인색했었다. 전형적인 자린고비였다. 특히 어린 내게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어려운 어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때 큰집에 아들이 없다 하여 나를 양자로 보내자는 논의가 있었다. 비록 돈 많은 큰집으로 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양자로 간다는 게 마음 내키지 않아 큰아버지 눈에 띄지 않으려고 무척 애썼다.


삶이라는 게 참 냉정한 모양이다. 평소 주기적으로 등산을 하는 등 건강관리에 소홀하지 않았던 큰아버지가 덜커덕 병에 걸려 서울의 대형병원에 입원했다. 위궤양이라며 수술하면 간단히 치료할 수 있다는 의사진단을 받고 서울로 온 것이다. 큰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병문안을 갔다. 큰 병에 걸리면 마음이 약해진다더니 평소 사근사근하지 않던 큰아버지도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무척 살가운 사람으로 변했다. 의사가 담배를 못 피우게 한다며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이기도 했다.


수술을 하던 날 의사가 급하게 아버지를 찾았다. 위궤양인 줄 알고 수술을 시작했는데 개복해 보니 위암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말기 암이어서 이미 때를 놓쳤단다. 의사는 남아있는 삶이 길지 않으니 편안히 지내다 가시게 하라고 권해 집으로 모셨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시골집으로 큰아버지를 찾아갔다. 퇴원한 지 한 달이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 강건하던 큰아버지 대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노인이 누워 있었다. 큰아버지는 나를 보자 반색을 하며 내 손을 잡은 채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다. 쉬시라고 권했지만 아니라며 손을 놓지 않았다. 며칠 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날아버지는 모두의 곁을 떠났다.

장지(葬地)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하관을 앞두고 내가 통곡을 하며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른 것이다. 집안 어른들은 화를 냈고 장지까지 따라와 준 조문객들 가운데에는 나와 큰아버지가 생전에 매우 돈독한 관계였는가 보다며 안쓰러워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의 눈총과 질타를 받았지만 도저히 내 감정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평상시 큰아버지에게 살가운 정을 느낀 것도 아니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집안 어른에게 막무가내로 담배를 달라고 떼를 쓴 모양이다. 어린 사람이 담배를 달라고 하자 그분은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욕설과 함께 담배를 집어던졌고 나는 그 담배를 주워 아주 맛있게 피웠다. 그 담배 사건으로 인해 나는 오래 동안 고향 출입에 애를 먹었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장지에서 먹은 음식이라고는 담배(?) 밖에 없었는데도 설사와 구토를 했다. 겨우 설사를 멈추게 하니 이번에는 몸살이 왔다. 뜨거운 7월에 오한으로 솜이불을 덮었어도 한기를 느꼈다. 며칠 동안 병원도 다니고 약도 먹어 몸살이 낫자 다시 설사가 시작됐다. 이런 식으로 설사와 몸살을 번갈아 앓다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걱정도 덩달아 태산만큼이나 높아졌다. 그래도 병마는 물러가지 않고 한 달 넘게 내 주위를 맴돌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나도 이런 것은 싫어하지만 이대로 가면 네 엄마 죽는다. 그러니 아무 말하지 말고 네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해라.”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워낙 진지하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며칠 후 서둘러 저녁밥을 먹고 어머니는 나를 앞세워 언덕 위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집으로 갔다. 박수무당 집이었다.

박수는 “젊은 사람이 우리 집에 오기 쉽지 않은데.... 효자네. 어머니 때문에 어려운 결심을 했어.” 순간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어쩌겠는가? 아버지와 약속을 했고 이미 이 집에 들어선 것을.... 박수가 시키는 대로 했다. 절하라면 절하고, 축원하라면 축원하고, 이리 오라고 하면 이리 오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갔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박수는 내게 담배를 주며 피우라고 했다. 아주 맛있게 담배를 피우고 나자 박수는 소지를 태우고 그 재를 물에 섞더니 마시라고 했다. 물을 마시고 나니 박수가 내 등을 토닥이며 의식이 끝났다고 했다.


어머니가 내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묻자 박수는 “큰아버지 혼령이 아드님에게 붙어 있었어요. 이제 보내드렸으니 괜찮을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나는 그들의 대화가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치 다리에 커다란 납덩이라도 매단 것처럼 발길이 무거웠다. 평소 같으면 20분도 안 되어 올 수 있는 거리였는데 1시간은 걸려 돌아온 듯했다. 자정이 가까워 겨우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내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설사도 몸살 기운도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저 오랫동안 병치레를 해서 기운이 없을 뿐 불편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뭐지? 박수무당의 말대로 큰아버지 혼령이 내게 붙어 있다 떠난 것일까? 아니면 앓을 만큼 앓아서 나을 때가 되었는데 때맞춰 굿을 해서 효과가 나타난 것처럼 보인 걸까? 아무튼 신기하기만 했다.





올해는 유난히 무더위가 일찍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 무더위 속에서 한기가 느껴지더니 설사와 몸살이 번갈아 나를 괴롭힌다. 약을 먹어도, 휴식을 취해도 쉬 낫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마음마저 약해지며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설마 큰아버지께서 되돌아오신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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