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내가 다가왔다. 거침없이 다가오는 기세에 눌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서다 보니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는 내게 바짝 다가와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더니 오줌을 눕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며 뿌리치려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잠시 후 오줌은 내 바지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보고 히죽 웃으며 얼굴을 향해 눕기까지 했다. 낭패스러워하는 내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듯 장난기 서린 표정으로 얼굴을 내게 들이대기까지 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그를 거칠게 밀쳐내며 “도대체 당신이 누군데 이러는 거야!”하고 소리 지르다 잠에서 깨어났다.
오줌 세례를 받았으니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물을 뒤집어쓴 것 같이 기분이 좋았다. 이건 또 무슨 조화람! 혹시 자면서 지려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아랫도리를 더듬어 보았다. 뽀송뽀송하다. 그럼 정녕 꿈이 맞는 모양인데 꿈치고는 너무 생생했다. 침대에 누운 채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이게 무슨 꿈이지?”하는 궁금증이 화창한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마구 피어올랐다. 이불을 걷어차고 핸드폰을 더듬어 손에 쥐었다. ‘꿈해몽’하고 친 다음에 찾기를 누르니 수도 없이 많은 역술인이며 무료 꿈해몽 사이트가 좌라락 나타났다.
‘오줌’이라는 말을 넣고 찾아보니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오줌 누는 꿈, 오줌 받아먹는 꿈, 남의 오줌으로 자신의 옷이 얼룩지게 되는 꿈 등 있을 법한 이야기가 수 십 가지는 족히 되는데 정작 내 꿈과 비슷한 이야기는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찾아도 비슷한 내용이 없어서 운세사이트에 가서 “돈 내고 물어볼까?”하는 생각도 했다. 조금만 더 찾아보자며 몇 군데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마침내 비슷한 꿈과 해몽이 있었다. “유레카!” 기쁨에 겨워 탄성이 나왔다. “간절히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꿈”이라는 해몽도 맘에 든다.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진다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게 무얼까? 로또복권 1등 당첨? 아들 취업?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었다. 오랫동안 궁리하다 “그렇다면 로또복권을 사자!”하고 결심했다. 아들이야 제 앞가림을 충분히 하고 있으니 걱정할 일이 아니고 그 외에의 많은 소원들은 결과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지만 로또복권은 주말이면 확인되기 때문이다. 토요일 저녁이 되었다. 복권을 꺼내놓고 간절히 빌었다. “1등에 당첨되게 해 주세요.” 빌고 나니 욕심이 너무 과했나 하는 자책이 들었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면 소원을 들어주겠어? 욕심을 줄여야 해.” 2등 당첨으로 소원을 바꿨다. 그러다가 3등으로 낮추다가 마침내 “본전만 찾게 해 주세요.”로 바뀌었다. 결과는? ‘꽝’이었다. 내가 간절히 원한 건 로또복권 1등 당첨이 아니었나?
속된 말로 ‘개꿈’이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상한 꿈을 꿔 놓고 호들갑을 떨었다는 민망함이 몰려왔다. 며칠이 지났다. 글을 같이 쓰는 문우가 물었다. “소설 어떻게 돼 가요?” “일단 퇴고하고 몇 개 출판사에 투고해 놓았어요.” “내가 아는 출판사가 있는데 전화해 볼까?” “좋지!” 그날 저녁에 문우에게서 그곳에도 원고를 보내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라고 하지 않는가? 즉시 보냈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출판사였다. 회장님이 만나보기를 원한다며 회사로 방문해 달란다. 무슨 일이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약속 날짜를 정하고 나니 궁금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고를 보낸 지 일주일도 안됐으니 다 읽어 보지도 못했을 것 같고, 설사 읽었다 해도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작가를 만나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닐 것 같고…. 머릿속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에이 아무려면 어떠냐? 만나보면 다 알게 되겠지.” 마음을 비웠다.
세상살이 알다가도 모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았다. 회장이 만나자고 한 이유는 황당하기조차 했다. 그는 내 첫 번째 소설을 읽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기가 막힌 인연이었다. 첫 번째 소설은 출판해 주겠다는 출판사를 만나지 못해 모든 비용을 내가 부담했다. 발간부수도 많지 않았다. 그런 책을 대형 출판사 회장이 읽고 작가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두 번째 소설은 내 책에 공감해 줄 출판사나 독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대형 출판사 몇 곳에 투고를 했었다. 그러면서 간절히 기원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출판하자고 연락해 주기를….
회장은 그 짧은 시간에 내 원고를 모두 읽었다고 했다. 가 편집한 책으로 730페이지에 이르는 두툼한 원고를 모두 읽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듯했다. 그는 원고를 읽은 소감을 이야기하고, 고구려 역사를 주제로 한 김성한 선생의 소설을 거론하며 내 원고를 수정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분량을 450페이지 이하로 줄이고 주인공도 변경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외에 몇 가지 제안을 덧붙였다. 회장은 뛰어난 출판기획자였고 작가였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낯선 사내는 행운을 가져다준 요정이었을까? 꿈이 좋아서였는지 해몽이 좋아서였는지 모르지만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알게 해 준 정령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