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셋이다. 어른들이 무지해서였는지 아니면 시절이 하 수상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세 개나 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호(號)나 자(字)를 지어 부르는 것도 아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한참 전이었다. 어느 여름날. 농번기여서 모든 사람들이 모두 논으로 밭으로 일을 나가 텅 빈 집에 불이 났다. 논에서 일을 하다 멀리 떨어진 집에서 불길이 솟는 것을 발견하고 식구들이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허름한 흙벽에 볏단으로 지붕을 한 집은 모두 타버린 다음이었다. 그야말로 세간살이 하나 건지지 못하고 몽땅 화마에게 쓸려버린 것이다. 그때 타버린 세간 중에 족보도 있었다고 했다.
집안에 하나밖에 없던 족보가 불에 타버리자 새로 태어난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다툼이 생겼다. 내 항렬(行列)에 들어갈 글자에 이견이 발생한 것이다. 누구는 제(濟) 자 항렬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병(炳) 자 항렬이라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희(熙) 자 항렬이라고도 했다. 족보를 확인하면 쉬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낯선 사람에게 족보를 보여주려는 집안이 없었다.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그 무렵에는 원래부터 족보가 없던 집안사람들이 전쟁 등의 이유로 족보를 분실했다며 양반 후손들의 족보에 자기들을 이어 붙이려는, 소위 ‘붙임 씨’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항렬자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다르다 보니 집집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항렬자를 썼다. 가장 많은 항렬자는 제(濟)였고 그다음이 병(炳)이었다. 요즘 같으면 별 일 아니었겠지만 당시에는 같은 항렬의 사촌이나 팔촌이 서로 다른 항렬자를 쓴다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큰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보다는 족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항렬에 대한 혼선도 해결하고 집안의 자존심도 회복하려는 어른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어렸을 때 귀동냥으로 들었던 단서들을 근거로 가까운 동네는 물론 먼 지역의 두메산골까지 찾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붙임 씨’를 하려는 불순한 사람들로 몰려 수모도 많이 겪었지만 노력한 보람이 있어 우리 사정을 귀 담아 듣는 집안을 찾아냈다. 그 집안에 전해오는 이야기와 우리 집안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맞았던 것이다. 그렇게 조상의 뿌리를 찾고 나니 제(濟) 자 항렬은 할아버지 대(代)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대로 된 항렬은 희(熙)였다.
자료 : 한국족보출판사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족보에 이름을 올리려다 보니 항렬자가 안 맞았던 것이다. 요즘 같으면 대수롭지 않을 일이겠지만 어렵게 족보를 찾은 어른들은 자식들의 이름을 항렬에 맞춰 족보에 올리고 싶어 했다. 문제는 이름을 바꾸기가 무척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그 당시에 개명(改名)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항렬자에 희가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은 이름을 하나씩 더 지어서 족보에 올렸다. 그때 지어진 내 이름이 희도(熙道)였다.
족보에 올릴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본래 이름은 그대로이니 가까운 친척들이 모이면 다양한 이름들이 튀어나왔다. 누군가가 “어이, 제○! 오랜만이야!”하고 다가오면 “병○ 형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하거나 “희○ 형님도 오랜만입니다.”하고 인사하는 풍경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이름은 ‘병(炳)○’이다. 어머니가 무속인에게서 받아온 것인데 공교롭게도 친척들이 쓰고 있던 ‘병’과 같은 돌림자였다. 이 이름은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어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경위야 어찌 되었든 호나 자 혹은 아명(兒名) 등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진 조선시대 양반처럼 나도 여러 개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 이름 중 어느 것에도 먹칠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